미국 초대 정부는 일종의 연립정부였다

입력
2025.02.24 04:30
26면
2.24 마버리 v. 매디슨- 1


1776년 신생 독립국 미국은 정당정치의 기반 없이 건국됐다. 1787년 연방헌법이 제정됐고 2년 뒤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부통령은 존 애덤스, 국무장관은 토머스 제퍼슨, 재무장관은 알렉산더 해밀턴이었다. 미국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 시민이 약 4만2,000명이었고, 총인구도 400만 명이 채 안 되던 시절이었다.

정치적 갈등은 당시에도 있었다. 상공인-채권금융인 계급에 기반한 ‘연방파’와 농민 등 서민층과 금융 소비계층(채무자)의 지지를 받은 ‘(민주)공화파(또는 주권파)’의 갈등이었다. 북동부 도시 기반의 연방파는 경제적 부를 중시하며 강력한 연방정부의 리더십을 추구한 반면, 남부 기반의 공화파는 과도한 중앙집권화와 상업화가 자족 농업의 희생 위에서 소수 특권계층만을 위하는 정치라며 반발했다. 양 파벌은 세금 정책과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외교정책 등을 두고 번번이 대립했다. 그러니까 미국 초대 정부는 일종의 연립정부였고, ‘빅4’ 중 공화파는 제퍼슨 한 명뿐이었다. 1792년 창당한 ‘반연방파’ 민주공화당을 지금의 공화당과 구분해 ‘제퍼슨 공화당’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그것이다.

1796년 대선에선 존 애덤스가 2대 대통령으로, 2위 득표자인 제퍼슨이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둘의 갈등은 정책 이견을 넘어 감정적 수준으로도 악화했다. 4년 뒤 선거에서 제퍼슨은 애덤스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고, 부통령에도 같은 반연방파인 에런 버가 뽑혔다. 사실상 미국 최초의 정권교체였다.

애덤스는 퇴임 하루 전인 1801년 3월 2일 법원조직법을 개정, 워싱턴D.C 순회법원 판사 및 치안판사 42명을 한꺼번에 모두 연방파로 교체 임명했다. 하지만 국무장관(John Marshall)은 다음 날, 즉 애덤스의 임기 마지막날까지 임명장을 모두 교부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판례를 낳은 ‘마버리 v. 매디슨(Marbury v. Madison)’ 소송이 시작됐다.(계속)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