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상대한 트럼프, 다음 차례는 김정은... '코리아 패싱' 차단 급선무

입력
2025.02.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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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평화 협상, 한반도 안보에도 직결
북미 정상회담 전초전 역할…파병 문제 최우선 논의 예상
한국, 리더십 부재 속 '코리아 패싱' 막을 묘수 없어 고민
셈법 복잡한 대러시아 관계, 중장기 전략 모색 나서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판하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국 대선 당시 공언한 대로 움직인다면 다음 차례는 북한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거래는 한국 외교의 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북한이 러시아와 혈맹 수준으로 밀착한 터라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미국이 한국을 제치는 '코리아 패싱'을 차단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사이가 험악해진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북한군 파병 등 북러군사협력 핵심 의제될 듯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잇따라 통화했다. 14일부터 열리는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종전 시나리오가 공개될 수도 있다.

이 같은 러우 협상은 한반도 안보에도 함의가 적지 않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철회가 핵심 안건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북한군 파병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13일 "본격적으로 러우 평화 협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테이블에 오를 의제는 북한의 파병 문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러우 협상의 진행과정과 결과는 향후 북미 정상회담의 양상을 가늠할 전초전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장기적인 군사협력을 통해 첨단 군사기술을 확보한다면,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미국도 결코 원치 않는 상황이다. 러우 평화 협상이 한반도 정세와 직결될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떼어내 '고립된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만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매개로 러시아와 간극을 좁히더라도, 북러가 서로 거리를 둘지에 대해서는 관측이 엇갈린다. 두진호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협상으로 미러 관계가 개선되면 상대적으로 북한과는 일정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현승수 통일연구원 부원장은 "러시아의 다음 타깃은 동북아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푸틴 대통령이 러우 전쟁이 일단락됐다고 북한과의 관계를 이완시킬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큰 오판"이라고 분석했다.


"셈법 복잡한 러시아와 관계 개선, 중장기 전략으로 접근해야"

이처럼 러우 평화 협상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미러 대화와 북미 대화를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개될 국제정세의 변화는 이미 코앞에 다가왔다. 반면 한국은 탄핵 정국이 지속되면서 국내 정치가 불안정하고 리더십이 취약한 상황에 갇혀 있다.

그로 인해 외부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현 부원장은 "대외 환경이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리더십까지 부재한 탓에 대북 정책, 대러 정책의 윤곽을 그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두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카운터파트가 없기 때문에 '코리아 패싱' 예방을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카드들이 많지 않다"며 "미 행정부에 대한 전방위적인 외교 접촉을 전개하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한러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과제다. 다만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춰 정부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터라, 전범국가 러시아와 곧장 사이를 좁히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 장기적이고 복합적 고려가 필요할 때다.

현 부원장은 "평화 협정 이후 러시아는 '한미 간 거리 두기'를 전제로 경제 협력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며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독자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실리'와 '가치'를 넘나드는 주도면밀한 중장기 전략을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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