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떨이가 날아다니던 시절

입력
2025.02.26 18:30
27면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상순, 변영로, 김동인, 조병화의 공통점은? ‘지독한’ 애연가다. 특히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은 담배를 자신과 한 몸처럼 여겼다. 하루에 아홉 갑가량 피웠다니 손가락 사이에서든 입술에서든 담배는 늘 타고 있었을 게다. 담배가 멋의 상징이던 시절 이야기다. 담배뿐이랴. 그는 시와도 한 몸이었다.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異音) 동곡(同曲)의 삼위일체/ 나와 내 시혼은 곤곤히 샘솟는 연기/ 끝없이 곡선의 선율을 타고/ 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 물들어 스며든다.”(오상순, '나와 시와 담배')

승리. 우리나라 첫 담배 이름이다. 1945년 광복을 기념해 나왔다. 대한민국 정부가 섰을 땐 ‘계명’이 태어났다. 백두산, 공작, 무궁화, 샛별, 화랑, 파랑새, 진달래, 사슴, 아리랑 등은 50년대를 자욱하게 했다. 한국전쟁 이후엔 '건설', 군사정권 시절엔 재건, 새마을, 충성, 환희 등이 나왔다. 담배 이름만으로도 그 시대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

80년대 솔, 장미, 아리랑, 거북선, 한라산 등에 이어 90년대 시나브로, 2003년 도라지연을 끝으로 우리말 담배 이름은 사라졌다. 담배의 위상도 추락했다. 담배 연기에서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담배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은 물론 사무실, 식당, 찻집, 술집에서의 흡연이 금지됐다. 폼 나게 담배를 꼬나물던 영화 속 주인공의 입과 담배는 뿌옇게 처리됐다.

담배 연기가 마지막까지 피어올랐던 곳은 신문사 편집국이지 싶다. 기사 마감 시간엔 거침없이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손가락 끝에서 타 들어가던 담배만큼이나 육두문자도 뜨겁게 오고 갔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90년대 말 이야기다.

여기서 질문 하나. 담뱃재를 담는 그릇은 ‘재털이’일까 ‘재떨이’일까? 재떨이가 맞다. ‘떨이’의 기본형 ‘떨다’는 달려 있거나 붙어 있는 것을 쳐서 떼어 낸다는 뜻의 동사다. 따라서 담배에 붙어 있는 재를 떨어 놓는 그릇은 재떨이다. 청소기를 돌리기 창틀 등에 앉은 먼지를 떨어내는 물건도 ‘먼지털이’가 아니라 먼지떨이다.

‘털다’는 붙어 있는 것이 떨어지게 흔들거나 칠 때 어울린다.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털어야 기분이 상쾌하다. 흙이 묻은 옷도 털어서 흙을 떨어내야 깨끗해진다.

연초 금연을 결심한 이가 많겠다. 한두 달 새 혹시 못 참고 피웠다면 다시 시작하시라. 몇 번인들 어떠랴.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도 이렇게 말했다. “담배 끊는 게 제일 쉽다. 나는 백 번도 넘게 끊었다.”



노경아 교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