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 ‘관세전쟁’이 국제 무역ᆞ통상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의 의도가 관철되든 그렇지 않든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표방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존립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트럼프의 관세 위협이 미국을 배제한 경제블록 형성을 촉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주요 경제권역 간 무역 충돌이 한층 격화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중국뿐 아니라 동맹ᆞ우호국까지 관세전쟁의 전선을 넓히고 있다. 한 달의 유예기간을 설정했지만 이미 캐나다ᆞ멕시코를 대상으로 확정해 발표했고, 공개적으로 유럽연합(EU)도 겨냥한 상태다. 중국 제품의 우회 수출로로 지목된 베트남을 비롯해 한국ᆞ일본ᆞ대만 등 아시아 주요국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트럼프가 무역 불균형 해소와 중국 견제를 위해 던진 관세 카드는 결국 글로벌 무역전쟁 확대와 경제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캐나다ᆞ멕시코의 사례에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무기로 관세를 활용한 징후가 뚜렷하지만, 상황 전개에 따라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고 맞불ᆞ보복관세가 반복되면서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실제로 관세장벽을 높이거나 이를 무기화하는 경우 상대국들도 맞불을 놓을 수 있지만 정면충돌의 후과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관세 무기화’에 따라 전 세계 교역이 미국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고,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이런 움직임을 “미국의 경제 개방 후퇴에 대비한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EU는 최근 두 달 새 남미 4개국, 브라질, 스위스와 각각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브릭스(BRICS)는 인도네시아를 1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시켰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ᆞ아세안)은 걸프협력기구(GCC) 및 인도와의 교역ᆞ투자를 늘리고 있다. 영국도 환태평양무역블록에 공식 가입한 데 이어 EU 회원국들과의 경제관계 복원에 나섰다. 브라질과 멕시코 간 무역협정 협상도 한창이다. HSBC 글로벌 리서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각국 교역의 60%가 역내에서 이뤄지고 있고 그 흐름은 트럼프 1기 이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1995년 WTO 체제 출범 이후 글로벌 통상 질서는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유지돼 왔다. 특히 개발도상국 간 무역은 지난 30년간 연평균 9.7% 성장했다. 자유무역이 개도국 경제 성장의 ‘강력한 엔진’이자 국가 간 경제적 격차 축소의 주요 동인이었던 셈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무역 분절화는 최악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실질소득이 5%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WTO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WTO 체제는 그러나 트럼프 1기 때인 2019년 미국이 상소기구 위원 선임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관세전쟁이 WTO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세계 각국이 앞다퉈 보호무역 일변도로 나아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PIIE는 그간 세계 경제가 블록화 등의 변형된 모습을 동반하며 성장해온 점을 들어 “(미국의 관세 공격이) 세계 교역을 끝장내기는커녕 전혀 다른 교역 체제를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