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회에서 만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자신이 국민의힘 당대표이던 2021년 '대선 후보 윤석열'과 처음 만난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자택에서 만나자마자 대뜸 '사일오(4·15)'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부정선거 주장에 찬동하는 음모론자들이 2020년 4월 15일 총선을 일컫는 용어다.
이에 이 의원은 "사일오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부정선거 있지 않습니까. 민경욱 의원이 얘기한 거. 인천지검 애들 시켜 싹 조사하려다 못 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계 입문 전부터 부정선거론을 맹신해온 것으로 알려진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가 되자 잠시 극단적 신념을 누르는 듯했다. 그러나 불법계엄 선포과정에서 보듯 중앙선관위를 장악하려던 정황이 탄로 났다.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오히려 부정선거 주장을 부추기면서 극우 진영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이 됐다. 그만큼 음모론의 영향력은 넓고 깊었다. 이 의원은 음모론이 확산한 배후로 재미동포 '애니 챈(한국명 김명혜)'을 지목했다. 이 의원은 "애니 챈은 여기저기 돈을 뿌리며 부정선거를 설파한 사람인 것으로 전해들었다"며 "(음모론자들이) 중국의 개입을 주장하나, 사실 애니 챈이 개입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지지층 눈치를 보면서 음모론 확산에 불을 지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부정선거 음모론을 어떻게 평가하나.
"5년 차 음모론인데 여전히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부정선거를 했다는 건지조차 얘기를 못 한다. 코미디다. 이젠 논리로 안 되니 '검증 좀 해보자'는 식으로 나온다. 분명히 해야 할 건 이미 법원에서 수차례 검증을 다 했고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났다는 점이다. 공론장에서 대표적 인물을 논파해야 음모론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황교안 전 총리 등에게 공개토론을 요청하는 것이다."
-2021년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발언 당시 상황은.
"사석에서 편하게 보는 자리였다. 말문을 트는 의미에서 편하게 말한 건지 몰라도, 용어(4·15)부터가 심상찮았다. 부정선거에 극단까지 경도된 분들이 초기에 쓰던 표현이다. 검찰총장을 지낸 분이 이래도 되나 싶었다."
-당대표로서 인식을 바꿀 순 없었나.
"윤 대통령이 당시 엄청 줏대 있던 건 아니다. '선거 나가는 건 당신인데, 사전투표 때문에 망하고 싶냐'고 했더니 신나게 독려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잠깐 심취한 건 줄 알았다. 끝내 계엄까지 이어질 거란 생각은 못 했다."
-부정선거 음모론 확산 배후라는 '애니 챈'을 원래 알았나.
"당대표 시절엔 몰랐다. 두세 달 전에서야 인지했다. 알아보니 유튜버 쪽을 중심으로 돈을 주고 다니면서 부정선거를 설파한 사람이라고 한다. 중국이 아니라 애니 챈이 한국 정치에 개입한 셈이다. 그와 교류했다고 알려진 인물들이 최근 일제히 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앞으로 고구마 줄기 뽑듯 의혹이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과도 가깝다고 전해 들었다."
-애니 챈처럼 왜곡된 신념을 가진 자산가가 한국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 아직은 추측이지만, 부정선거론을 주창하는 스피커들의 수익 구조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일례로 전광훈 목사 집회에는 유창한 영어 동시통역사가 함께한다. 집회 참석자 구성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다. 미국 쪽을 통해 왜곡된 구조를 통해 자금이 유입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이런 맥락에서 애니 챈의 수상한 자금 고리를 추적하는 중이다."
-국민의힘이 부정선거에 제대로 선을 긋지 못해 음모론을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지지층에 음모론을 좋아하는 덩어리가 있다는 걸 알고는 알아서 눈치를 본 거다. 비겁한 몇몇 의원은 '부정선거는 아니지만 부실선거는 맞다'는 식으로 음모론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대규모 선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쇄 오류 등을 선거 부정과 연결 짓는 행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