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 거부한 의사, 몰래 수술해준 의사···환자·가족은 '운'에 울고 웃었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작년 7월 16일이었다. 송찬화(당시 82)씨의 큰딸 송정아(52)씨는 수십 통의 진료 예약 전화를 돌리며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버지 건강검진 결과, 지난해 6월 25일 하순 '폐 결절이 보이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을 통보받았는데 초진환자를 받아주는 '큰 병원'이 없어서였다. 뉴스를 잘 챙겨보진 않았지만, 얼마 전에 본 '서울대병원 등 교수들 무기한 집단휴진 돌입(6월 17일)' 기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정아씨가 전화기 너머로 들은 말은 잔인하기만 했다. "내년에야 가능하다" "이미 암 확진을 받은 환자들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거절이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 같은 답이 반복되고 나서야 "암 판정을 내려줄 의사가 없다"는 거절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예약이 된 병원은 서울성모병원으로, 초진일은 11월이었다. 그나마도 해당 병원에서 순환기내과 진료를 받아왔다는 점을 읍소했기에 가능했다. 검사 일정은 더 뒤로 밀릴 게 분명했다. 암 진단 후 1개월 이상 수술을 기다린 환자는 1개월 이내 수술을 받은 환자에 비해 사망률(유방암 1.59배, 직장암 1.28배, 췌장암 1.23배)이 크게 증가(2012년 서울대 의대 윤영호·노동영·허대석 교수팀)한다. 정아씨는 불안함이 커질 때마다, 매일 새벽 인근 공원으로 운동을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암이 아닐 것"이라고 걱정을 눌렀다. 2024년 8월 26일. 그날도 오전 5시가 되자 계단을 내려오는 아버지의 지팡이 소리가 들려왔다. 정아씨는 매일 아침 그 소리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날은, 푹 내쉬는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계단을 올라서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부터 쏟아졌던 비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를 본 것은 그날 저녁 정아씨 가족이 사는 도시에 있는, 경기 지역의 A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였다. "언니, 아버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서 구급차 불렀어." 퇴근 후 병원으로 달려간 정아씨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폐암 말기입니다. 치료가 의미 없는 수준이에요." 산소 호흡기를 낀 아버지는 자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해하는 눈빛이었다. 그것도 잠시. 아버지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가끔 정신이 들 때면, 고통스러운 듯 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몸에 달린 줄들을 떼어냈다. 의료진은 고통이 너무 클 것이라며, 깨어 있기보다는 재우는 쪽을 권했다. 폐암 말기라면서도, 병원은 "폐암 진단을 내려줄 의사가 없다"고 했다. 하루 400만 원씩 무섭게 쌓이는 병원비에 본인부담금을 감경받을 수 있는 암 산정특례 등록을 요청하자, A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의료진을 괴롭히지 말라. 산정특례 안 해줄 거다"는 모진 말로 정아씨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의료진들에게 문의했더니 "저 교수님은 한 번 안 해준다고 하면 안 해 주는데 큰일"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정아씨는 마치 전공의 집단 사직의 분풀이를 하는 것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의사가 환자 위에 군림해선 안 되잖아요. 그때 느낀 건, 내가 신이고 나 아니면 너희들은 아무것도 못 해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손쓸 수 없이 암이 진행됐기 때문에 아버지는 살리기 어려웠다고 해도, 암 산정특례 등록조차 거부하며 환자 가족을 괴롭히는 의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정아씨가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의 도움을 받아, 국민신문고와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넣었고 A병원 교수는 9월 14일에서야 산정특례를 등록해줬다. 정아씨 가족은 아버지가 숨을 거둘 때까지 해당 교수를 단 한 번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한 달 만인 9월 25일 송찬화씨는 가족들과 인사 한마디, 유언 하나 나누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짐은 영 단촐해 정리할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평생 아끼고 아껴 사는 편이었다. 무언가 고치는 데 쓰시겠다며 마냥 모아두셨던 못과 나사, 낡은 구두 주걱, 종로 어딘가에서 사왔다는 낡은 구두. 옷은 큰 캐리어 하나밖에 되지 않았다. A대학병원 응급실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던 동생은 "다른 병원으로 갔었어야 했다"면서 자신을 탓했다. 결국 아버지는 11월 초진 예정이었던 서울성모병원엔 한번 가보지도 못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그로부터 닷새 후, 환자가 아닌 전공의에게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첫 사과(9월 30일)를 건넸다. "의사도 본분을 잊은 거지만 정부는 뭐가 급해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간을 두고 조율을 했어야지···." 정아씨는 이상 소견을 받고 11월 진료만 기다렸던 석 달이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암은 정리할 시간이 있어 축복받은 병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좀 더 좋은 것을 해드릴걸,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릴걸 그랬어요." 정아씨는 아버지가 응급실을 찾기 직전이었던, 평범했던 7월 어느 날을 떠올리며 결국 눈물을 떨궜다. "마트에서 육수를 사다가, 냉면을 해드렸는데요. '머리털 나고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본다'고 농담을 하시면서 맛있게 드시는 거예요. 근데 그때 좀 더 앞에서 말 붙이고 지켜봐 드릴걸, 차려드리고선 딴짓을 해서···." 인사 한 번 없이 아버지를 보내드린 뒤, 별게 다 후회스럽다. 그나마 환자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는 의사를 만나, 목숨을 건진 '운 좋은' 경우도 있었다. 정지환(가명·66)씨가 그랬다. "아무래도 암인 것 같은데, 큰 병원으로 가셔야겠습니다." 전남 지역 한 종합병원에 이런 말을 들은 게 2023년 12월 26일이었다. 혈뇨가 보여 동네 비뇨기과를 찾았다가 심상치 않아 종합병원을 다시 찾은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심정으로 찾은 지역 종합병원에서 의사는 이런 일이 일상인 듯, 대수롭지 않게 전립선암 진단을 내렸다. 오히려 수술만 하면 되는 '착한 암'이라며 씨를 위로하기까지 했다. 비교적 빠르게 전남대병원에서 수술날짜가 잡혔고 정씨는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2024년 2월 19일) 기사를 봤지만, 이미 잡은 자신의 수술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술(2월 28일)을 앞둔 2월 23일 병원에서 온 연락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사이에 전이되면 어떻게 하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의사는 석 달 정도는 호르몬을 낮추는 약으로 전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다시 잡힌 날짜는 5월 23일. 정씨는 약을 한 움큼씩 먹어가며, 수술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업무개시명령 위반 전공의 5,000명에 행정처분 사전 통지서 발송(3월 11일) △ 의대 교수들 집단 사직서 제출(3월 25일) △병원 교수·개원의 단축진료 실시(4월 1일) 등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5월 20일. 두 번째 수술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번에는 수술 날짜를 잡는 대신 "전공의가 돌아오면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날부터 매일 뉴스만 봤던 것 같아요. 언제 끝나나 해서." 4일 후, 2025년도 의대 정원 1,509명 증원이 확정되며 갈등은 더욱 격화됐다. 정씨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지켜본 교수는 마취과 인력이 있는 한 전문병원으로 직접 출장을 나와 집도해주겠다고 했다. 결국 정씨는 암 진단 6개월 만인 6월 12일, 대학병원이 아닌 한 전문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수술 후 회복하며 그는 현재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지난 13일 전남 자택에서 만난 정씨는 되뇌였다. "저는 운이 정말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환자들은···." 지난해 2∼7월 전국 의료기관에서 초과사망이 무려 3,136명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윤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 만든 자료다. 2015~2023년(2~7월) 입원 환자 사망률은 0.81%였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엔 1.01%였다. 여기에 중증도를 보정해 초과사망자 수치를 도출했다. 인구 10만 명당 초과 사망은 전남, 부산, 경북 순으로 높았다. 거주지가 전남인 환자의 입원 사망률이 0.69%에서 0.92%로 증가했고, 부산 0.85%→1.09%, 경북 0.89%→1.13%로 상승했다. 다만 2024년(2~7월) 입원 사망률 자체는 강원이 1.46%, 제주가 1.40%로 가장 높았다. 강원과 제주는 2015~2023년(2~7월)에도 입원 사망률이 각각 1.06%, 1.05%를 기록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1%를 넘었다. 지난해 2~9월 47개 상급종합병원의 6대 암(위·대장·폐·간·유방·갑상샘) 수술은 전년 동기보다 21% 줄었다. 물론 1·2차 병원의 수술 건수가 늘어 일부 흡수됐을 수 있지만,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하는 중증환자의 고난은 끝이 없다. 그렇지만 환자단체는 의사계에 굴복해 다시 의료개혁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 원치 않는다. 김성주 대표는 "환자와 국민 중심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시작한 것인데, 입학 정원에 관한 문제들만 지금 화두가 돼서 마치 이 문제가 전체처럼 비치고 있다"며 "지난 1년간의 희생에도 모두 없던 일로 돌아갈까 봐 겁이 난다"고 했다. 이어 "환자는 아플 때 제때, 적절하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독과점적인 구조와 의사 한 명이 하루에 몇백 명씩 봐야 하는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전공의들이 떠난 근본적 원인은 필수의료 기피와 지역의료 붕괴다. 이들은 정부가 돌아오라고 해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정부와 국회는 의료개혁 제도 입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필수의료 기피와 지역의료 붕괴의 최대 피해자는 의사도, 전공의도 아닌 환자"라며 "신속하고 적극적인 의료개혁을 통해 의사와 전공의가 필수의료를 선호하게 만들고 지역의료를 살려야 환자의 치료 접근권과 치료받을 권리가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회는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응급실·중환자실 등은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의료 공백 방지 법안'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