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문학상 '최종 후보 전문 작가' 정보라 "한국사회, 유토피아 척도는…"

입력
2025.01.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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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전미도서상 이어 미국 필립 K. 딕상 후보 지명
정보라 "번역의 힘… 학생들과 '인간성' 토론에서 영감"
"변화의 한복판서 고통스럽지만 절망과 희망 공존해"

2022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2023년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 2025년 미국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 자신을 ‘최종 후보 전문 작가’라고 말하는 소설가 정보라(49)의 이력이다. 정 작가는 23일 한국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을 향한 세계 문학계의 거듭되는 호명에 대해 “번역의 힘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해외 문학계가 내 작품을 딱히 더 좋아하는 게 아니라 국내외에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즐기며 번역하시는 분이 늘어난 덕을 덩달아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작가의 이름을 세계 3대 공상과학(SF) 문학상인 필립 K. 딕상의 후보로 올린 건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다. 2021년 출간된 '그녀를 만나다'의 영역본으로, 국문판도 최근 같은 제목으로 개정됐다. 한국 작가가 한국어로 쓴 작품이 이 상의 후보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번역은 그를 부커상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로 만든 소설집 ‘저주토끼’를 영어로 옮긴 안톤 허 번역가가 맡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8년 서울의 한 책축제에서 허 번역가가 ‘저주토끼’를 우연히 읽고 “번역하고 싶다”고 제안하며 시작됐다. 정 작가는 “’안톤 선생님’이 나를 선택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계시고,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며 “내가 선생님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성과를 내는 비법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이 소설집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성전환 수술 이후 강제 전역 조치를 당한 고(故) 변희수 하사, 대기업의 자원 독점 등 현실 속 생존과 상실을 인간이 사라지고 기계만 남은 세계, 식인(食人)을 유발하는 전염병 같은 초현실적인 요소로 풀어낸다. 정 작가는 “‘너의 유토피아’에 실린 소설은 대학 강사 시절 ‘SF를 통한 자아의 발견’이라는 수업에서 영감을 얻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수업에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쓴 소설이라는 것. 정 작가는 “매 학기 인간의 특성은 정의하려고 하면 할수록 모호해지고 차별과 배제의 가능성만 커지기 때문에 정의하지 않는 쪽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고 귀띔했다.

자신의 취미를 ‘데모’라고 밝히고 활동가로도 활동하는 정 작가에게 생전 “내가 옹호하는 대의는 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의”라면서 전체주의에 반대했던 미국의 유명 SF 작가 필립 K. 딕을 기리는 문학상은 누구보다 더 어울린다. 최근에도 12·3 불법 계엄에 반대하는 탄핵 집회와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 농성 1주년 기념집회 등에 참석한 그다.

“요즘 데모할 거리가 많다”는 정 작가에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유토피아 척도’를 물었다. 소설집 표제작에서 질병 징후나 부상, 통증 정도를 1부터 10까지 수치화해 묻는 진단 설문용 로봇의 질문을 빌렸다. 정 작가가 꺼내든 숫자는 ‘3’이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변화의 한복판에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절망과 희망이 같이 있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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