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물어도 대답 안 한 윤 대통령... '묵비권 전략' 득실은

입력
2025.01.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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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결정에 불리할 수 있지만 '영향 無' 판단
검사 질문을 수사 방향 파악할 기회로 삼아
'불법 수사' 논리 유지... 재판에선 적극 대응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5일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0시간 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 내내 침묵을 유지했다. 윤 대통령은 조사 초반 "비상계엄은 대통령 권한"이란 입장만 밝힌 뒤 이름, 직업, 주소를 묻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공수처 주변에선 윤 대통령의 '묵비권 전략'이 향후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줄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진술 거부해도 구속·기소 영향 없을 거란 판단

법조계에선 '묵비권'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진술 거부권이 헌법이 보장한 권리는 맞지만, 혐의가 명백한데도 아무 협조도 하지 않으면 도주·증거인멸 우려를 따지는 영장심사에서 득이 될 건 없다는 얘기다. 검사 출신인 김경진 전 국민의힘 의원은 "혐의를 인정하면 오히려 불구속되는 경우들이 있다. 묵비권 행사가 그렇게 유리한 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묵비권 행사 여부와 상관없이 윤 대통령 수사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을 우두머리로 한 내란 혐의로 이미 군경 지휘부 10명이 구속기소됐기 때문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 대통령 입장에선 묵비권을 행사해도 특별히 더 불리해질 게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오히려 검사가 확보한 내란 공범 진술과 배치되는 얘기를 하면 재판에 불리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검사 질문을 들으며 수사 방향과 확보된 증거를 파악하는 기회로 삼았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판사 출신의 신중권 변호사는 "함께 입회한 변호사가 검사 질문을 듣고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면서 재판에 대비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이 16일 조사에 응하지 않은 건 대략적인 수사 방향을 이미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법 수사" 태도 유지 명분 쌓기

수사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묵비권을 행사했을 수 있다. 과거에도 정치권 인사들이 표적 수사를 주장하며 진술을 거부한 적이 있다. 2019년 자녀 입시 의혹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일일이 해명하는 게 구차하고 불필요하다"며 침묵을 지켰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이명박 전 대통령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한 전 총리는 2009년 12월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된 뒤 '부당 수사'라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검찰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되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진술을 거부했지만, 첫 공판에선 A4 용지 7장 분량의 모두 진술을 하며 "무리한 기소"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도 공수처와 검찰 조사에선 침묵을 유지하다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여러 차례 "대통령을 기소하거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원 재판엔 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판사 출신의 오지원 변호사는 "공수처 수사가 정당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묵비권을 행사하고 조사에 불응하는 것 같다"며 "법정에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