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5일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0시간 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 내내 침묵을 유지했다. 윤 대통령은 조사 초반 "비상계엄은 대통령 권한"이란 입장만 밝힌 뒤 이름, 직업, 주소를 묻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공수처 주변에선 윤 대통령의 '묵비권 전략'이 향후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줄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법조계에선 '묵비권'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진술 거부권이 헌법이 보장한 권리는 맞지만, 혐의가 명백한데도 아무 협조도 하지 않으면 도주·증거인멸 우려를 따지는 영장심사에서 득이 될 건 없다는 얘기다. 검사 출신인 김경진 전 국민의힘 의원은 "혐의를 인정하면 오히려 불구속되는 경우들이 있다. 묵비권 행사가 그렇게 유리한 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묵비권 행사 여부와 상관없이 윤 대통령 수사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을 우두머리로 한 내란 혐의로 이미 군경 지휘부 10명이 구속기소됐기 때문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 대통령 입장에선 묵비권을 행사해도 특별히 더 불리해질 게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오히려 검사가 확보한 내란 공범 진술과 배치되는 얘기를 하면 재판에 불리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검사 질문을 들으며 수사 방향과 확보된 증거를 파악하는 기회로 삼았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판사 출신의 신중권 변호사는 "함께 입회한 변호사가 검사 질문을 듣고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면서 재판에 대비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이 16일 조사에 응하지 않은 건 대략적인 수사 방향을 이미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사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묵비권을 행사했을 수 있다. 과거에도 정치권 인사들이 표적 수사를 주장하며 진술을 거부한 적이 있다. 2019년 자녀 입시 의혹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일일이 해명하는 게 구차하고 불필요하다"며 침묵을 지켰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이명박 전 대통령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한 전 총리는 2009년 12월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된 뒤 '부당 수사'라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검찰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되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진술을 거부했지만, 첫 공판에선 A4 용지 7장 분량의 모두 진술을 하며 "무리한 기소"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도 공수처와 검찰 조사에선 침묵을 유지하다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여러 차례 "대통령을 기소하거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원 재판엔 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판사 출신의 오지원 변호사는 "공수처 수사가 정당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묵비권을 행사하고 조사에 불응하는 것 같다"며 "법정에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