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경매법정. 150석 좌석 중 10여 군데를 제외하곤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이 법정은 강남권 매물이 거래되는 곳인데 이날에만 아파트 6건, 주택 3건, 다세대(빌라) 19건 등 45건의 부동산이 경매 목록에 올랐다. 경매로 '내 집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는 정모(47)씨는 "한동안 경매에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 물량이 많아졌다고 해서 다시 법정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매법정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은 '임의경매' 매물이 크게 늘고 있어서다. 14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건물·토지·집합건물 등 부동산의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13만9,874건에 달했다. 2013년(14만8,701건) 이후 11년 만의 최대치다. 집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했던 2021년(6만6,248건)과 비교하면 2.2배나 많은 규모다.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원금이나 이자를 3개월 이상 갚지 못했을 때 금융기관이 담보를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최근 임의경매 매물이 늘어난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2020년 전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열풍의 후유증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대출을 최대한 끌어모아 집을 산 이들이 높아진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동산을 경매에 내놓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남권 부동산까지 경매시장에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 입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니다. 이날 중앙지법 경매법정에서도 경매사 앞에 수십 명이 줄서서 서류를 받아갔지만, 정작 입찰에 나선 인원은 매우 적었다. 45개 매물 중 입찰자가 1명 이상인 부동산은 8개로, 총 입찰 인원도 20명에 불과했다. 통계를 봐도 낙찰률(경매 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과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율)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감정가 이상으로 낙찰되는 물건도 손에 꼽았다. 서초구 잠원동 '상지 리츠빌 카일룸' 전용면적 169㎡는 4명이 입찰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가의 76%인 40억1,110만 원에 낙찰됐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아파트는 감정가의 86%인 1억3,400만 원에, 서초구 양재동의 한 근린시설은 11번의 유찰을 거쳐 감정가의 12%인 5,300만 원에 낙찰됐다. 이날 입찰자가 있는 8개 매물 중 감정가 이상의 값으로 낙찰된 것은 서울 종로구 숭인동 오피스텔(1억2,000만 원·감정가 103%), 강남구 양재동 다세대주택(4억7,599만 원·감정가 105%) 등 2채뿐이었다.
전체 법원이 취급한 경매로 넓혀봐도 인기 매물인 아파트의 낙찰률마저 40% 안팎에 머물고 있다. 경·공매 데이터 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경매에 나온 서울 아파트 3,386곳의 낙찰률은 42.6%, 낙찰가율은 91.6%에 불과했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빌라에 대한 선호도도 떨어져 다세대 경매 입찰도 줄었다는 게 다수 경매 분석 업체의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경매 물량이 계속 늘어날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수요자들의 관망세 또한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강남권의 경우 감정가 이상으로 낙찰되는 게 대다수였는데 최근엔 주춤해졌고, 금리나 부동산 시장 상황을 봤을 때 경매 시장도 관망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경매 물량 자체는 올해 하반기까지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