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뮤지컬 '시지프스'는 인류 멸망에 직면한 미래 세계가 배경이다.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고립된 곳에 간신히 살아남은 네 명의 배우들은 죽음의 압박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가운데 스피노자의 말을 실천한다. 연극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스피노자의 생각이 위기 속에서도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윤리성을 강조한 말이었다면, 이들의 실천은 죽음 앞에서 실존을 찾으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이들은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연극으로 올린다.
뮤지컬 ‘시지프스’는 카뮈의 ‘이방인’을 극화한 작품이다. 제목이 ‘이방인’이 아닌 ‘시지프스’인 것은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그의 또 다른 철학 에세이 ‘시지프스 신화’에 좀 더 직접적으로 닿아 있기 때문이다. 카뮈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고 이듬해 ‘시지프스 신화’를 완성했다. 두 작품이 담고 있는 세계관은 매우 유사하다. 주어진 형벌을 주체적으로 완수하는 ‘시지프스 신화’는 ‘이방인’을 철학의 언어로 풀어낸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이 난해한 소설을 뮤지컬로 옮긴 이들은 추정화(작가 겸 연출), 허수현(작곡) 콤비다.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영감을 받은 ‘스모크’와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인터뷰쇼 형식으로 만든 ‘프리다’ 등 실험적인 중소형 창작뮤지컬을 만들었다. 뮤지컬 ‘시지프스’는 지난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 소개돼 창작뮤지컬상을 받기도 했다.
언노운(이형훈, 송유택)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맡고 나머지 세 인물이 ‘이방인’의 마리, 살라마노 영감, 레이몽 등을 나눠 연기하며 극중극을 전개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뫼르소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장례식의 뜨거운 태양은 그의 사고를 마비시킨다. 장례식 이후 뫼르소는 불량한 이웃인 레이몽의 부탁을 들어주다가 아랍인을 살해하게 된다. 정당방위로 가벼운 처벌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재판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뫼르소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살인 자체보다도,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이, 장례식 다음 날 여자친구와 사랑을 나눴다는 것이, 총을 여러 발 쐈다는 것이 뫼르소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된다.
뮤지컬 ‘시지프스’는 소설 ‘이방인’의 스토리를 비교적 충실히 쫓아가지만 이야기의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배우들의 역할 놀이를 통해 가볍게 접근한다. 무엇보다도 소극장 뮤지컬에서는 드문 역동적인 춤이 강렬하게 펼쳐진다. 네 배우의 에너지를 담아낸 노래와 춤, 그리고 현란한 조명이 이뤄진 무대는 무거운 이야기를 조금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무대를 꽉 채운 에너지는 뮤지컬 언어로 ‘이방인’을 읽는 재미를 준다.
어려운 원작을 대중적으로 풀어냈지만 아쉬움도 남긴다. 원작에서 이방인으로서 뫼르소는 자기 기준이 명확한 인물이었다. 반면 뮤지컬에서는 이를 짧은 장면으로 시각화하다 보니 뫼르소를 향한 비난들, 이를테면 레이몽이 여자친구에게 복수할 것을 알면서도 유인하도록 편지를 대신 써 주는 장면이나, 아랍인을 살해하는 문제의 장면에서 뫼르소를 옹호하기가 힘들다. 뮤지컬 ‘시지프스’는 멸망 앞에서 삶의 기쁨을 느끼는 처절함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세기말적 상황이 극 초반에 인지되다가 극중극에서는 그러한 분위기가 드러나지 않다 보니 이들의 연극이 실존적 상황에서 벌이는 사투임을 종종 놓친다.
아쉬움은 있지만 뮤지컬 ‘시지프스’는 어려운 원작의 메시지를 대중적으로 쉽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죽음을 통해 더 강렬한 삶의 활기를 느끼게 되는 배우들은 지구 종말의 순간에도 자신들의 돌을 굴리는 것을 멈추지 않은 시지프스가 돼 삶의 활기를 쏟아붓는다. 화려한 음악과 춤, 그리고 역동적 에너지로 실존적 상황에서 삶의 활기를 느끼게 해 준 것만으로 ‘이방인’을 뮤지컬로 만들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증명한다. 3월 2일까지 예스24 스테이지2관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