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황혼 이혼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2022년 일본의 전체 이혼 건수는 감소했지만, 결혼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 비율은 전체의 23.5%를 차지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한국의 황혼 이혼도 최근 다소 감소했으나, 혼인 지속 기간이 3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이 전체 이혼의 16% 이상을 차지한다.
노년의 부부 관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젊은 시절에는 가족 부양과 사회적 역할이 중심이었다면, 노년기에는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등이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한쪽 배우자가 치매나 중증 질환을 앓게 되면 간병 부담이 가중되면서 신체적‧심리적 고통이 더해진다. 노인병 내과 진료를 하다 보면 이런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처음에는 보호자로 진료실을 찾던 배우자가 결국 환자가 돼 함께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노년의 부부들도 있다. 공통의 취미를 통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이들은 노년의 본보기가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갈등도 생길 수 있지만, 이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나간다. 배우자와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관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부부는 젊은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서로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배우자에게 무관심한 경우도 종종 보인다. 환자의 배우자가 병실에 거의 나타나지 않거나 환자 상태에 무심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그렇다. 보통 과거의 갈등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젊었을 때 쌓아둔 불만이나 상처가 노년에 이르러 관계 단절로 이어지기도 한다. 부부 관계는 단순히 현재의 순간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젊었을 때부터 관계를 지속적으로 돌보고, 사소한 다툼이라도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년은 인생의 정점에서 내려와야 하는 시기이지만, 든든한 동료와 함께라면 그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때로는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하는 균형이 중요하다.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하는 시간을 채워갈 때, 노년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사회적 활동이나 봉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도 부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건강과 경제적 준비뿐만 아니라, 배우자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신뢰와 존중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배우자와 함께 웃고, 걷고, 대화하며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노년의 삶을 더욱 빛나게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손을 맞잡는 것이다. 배우자는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누는 가장 중요한 존재다. 이런 관계를 지속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매일의 작은 노력과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 서로의 존재가 삶의 가장 큰 위안과 기쁨이 될 때, 노년의 시간은 새로운 황금기로 채워질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광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