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 엇갈리는 인플루엔자 유행…“백신·개인방역으로 대비해야”

입력
2025.01.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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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 환자 13배 이상 급증
1월 vs 2~3월 정점 예측 달라
소아·청소년 환자 가장 많아 주의


“인플루엔자가 유행한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소아과에 가보니 콜록콜록 기침하는 어린이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세종에 거주하는 한모(39)씨의 초등학생 자녀는 최근 인플루엔자 확진 판정을 받았다. 7세인 한씨의 아이는 이달 8일 오전 소화가 안 된다며 구토를 하더니 오후엔 열이 38.3도까지 올랐다. “지난해 11월에 맞은 인플루엔자 백신만 믿고 개인 방역에 소홀했던 것 같아요. 인플루엔자 환자가 많이 생긴다고 들었으면 사람 모인 곳에 갈 땐 마스크라도 씌울걸….”

인플루엔자 환자가 8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경고등이 켜졌다. 예년보다 낮아진 백신 접종률, 최근 몇 년간 인플루엔자 유행이 크게 없어서 생긴 자연면역 하락, 마스크 착용과 같은 소홀한 개인방역 등이 맞물린 결과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4월까지 유행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위생관리와 백신 접종에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13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월 첫째 주(2024년 12월 29일~2025년 1월 4일) 표본감시 의료기관을 찾은 외래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증상을 가진 의심환자 수는 99.8명으로 나타났다. 전주(73.9명)보다 약 35%, 한 달 전(12월 1~7일‧7.3명)과 비교하면 1300% 이상 뛰었다.

인플루엔자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점 시기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질병청은 지난 10일 “겨울방학 직전에 환자 수가 정점을 찍은 뒤 1월 이후 서서히 감소해 온 점을 고려하면 향후 1~2주 안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행의 정점은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대안산병원 박대원 감염내과 교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12월 말에서 1월 초·중순 사이 1차 유행을 한 뒤 2~3월 개학 시기를 전후로 다시 정점을 찍는 특성이 있다”며 “이전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행이 한 달 이상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번엔 그렇지도 않아 유행 기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연령별로 보면, 소아‧청소년 전파가 인플루엔자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올해 1주차 기준 1,000명 당 환자 수는 13~18세가 177.4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7~12세(161.6명), 19~49세(129.1명), 1~6세(83.1명) 순이었다. 영유아에게 치명적인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가 동시 유행인 점도 부모의 우려를 키운다.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지만, 영유아가 걸리면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는 RSV는 1세 미만 유아 사망의 주요 원인이다. 이달 첫째 주 RSV 환자 수(578명)는 전년 동기(431명)보다 약 34% 늘었다. 5세 아이를 둔 김기석(42)씨는 “코로나19 때 쌓아뒀다가 최근까지 쓰지 않았던 마스크를 다시 꺼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올해 첫째 주 기준)는 ‘A(H1N1)pdm09’가 가장 많고, 이어 같은 형인 H3N2, B형 바이러스 순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A‧B‧C형으로 나뉘는데 C형은 감염 빈도가 적고, B형은 변이가 잘 생기지 않는다. 반면 A형은 변이가 잘 일어나 대유행을 불러온다. 현재 위세를 떨치는 A(H1N1)pdm09는 2009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H3N2는 1968년 홍콩독감 대유행을 불러온 바이러스로 이후 작은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현재까지도 유행하고 있다. 리노바이러스 등 다양한 바이러스가 원인이 돼 발생하는 감기와 차이가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통상 1~4일(평균 2일) 후에 증상이 나타난다. 발열과 기침, 두통, 근육통, 콧물, 인후통 등이 대표 증상이며, 소아에게선 구토와 설사가 나타나기도 한다. 합병증은 고령자와 어린이, 만성질환자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가장 흔한 합병증은 중이염과 세균성 폐렴이다. 이외에도 심장 근육이나 뇌에 염증이 발생하는 심근염과 뇌염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만성기관지염과 만성호흡기질환, 만성심혈관계 질환의 경우 인플루엔자 감염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강남베드로병원 내과 최연근 과장은 “봄까지 인플루엔자 유행이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백신 접종을 권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생후 6개월 이상부터 13세 어린이(2011년 1월 1일~2024년 8월 31일 출생자)와 임신부, 65세 이상 고령자(1959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는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 지원대상이다. 지정의료기관‧보건소에서 무료로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접종 후 약 2주가 지나면 항체가 형성되고, 성인의 경우 백신 접종으로 약 70~90%의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최천웅 교수는 “코로나19 대유행 때처럼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를 일상화하고 당분간은 실내에 다수가 모이는 곳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다. 박 교수는 “개학과 맞물려 초·중·고교 학생들 사이에서 인플루엔자가 빠르게 퍼질 가능성이 있다”며 “개학 전까지 예방접종을 완료하고, 학교 내에선 손 소독제 사용과 정기적인 환기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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