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계엄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된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했다.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 검사 면담에서 "대통령의 방어권과 국격을 고려해 달라"며 체포영장 집행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윤 대통령은 그간 '불법 수사'라며 공수처 수사를 거부했지만,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하자 '적극 대응'으로 전략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 윤갑근 변호사 등은 12일 오후 2시쯤 경기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민원실에 방문해 계엄 사건과 관련한 선임계를 제출했다. 선임계에는 윤 변호사를 비롯해 배보윤 변호사, 송진호 변호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윤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한 것은 처음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세 차례에 걸쳐 발송된 공수처의 출석 요구서 수령을 거부하면서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에도 별도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돌연 선임계를 제출한 것은 박종준 전 대통령실 경호처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최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이 집행될 경우, 정식 변호인 없이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일선의 한 부장검사는 "향후 한남동 관저 수색 및 체포 과정에서 절차적 적법성에 대한 의견을 적극 제시하려면 해당 수사기관에 선임계를 제출한 변호인이 필요하다"며 "공수처가 영장 집행을 강행하면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체포영장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음에도 공수처의 집행 계획에 변화가 없자, 정식으로 입장을 전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날 윤 대통령 측은 선임계 제출 직후 진행된 공수처 검사와의 면담에서 "대통령을 체포하면 우리나라의 국격이 떨어지게 된다. 대통령의 방어권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번 체포영장의 법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경찰과 경호처 간의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윤갑근 변호사는 8일 기자회견에서 "공수처가 서울중앙지법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 관련 절차에 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의 선임계 제출이나 의견 전달과 무관하게 체포영장 집행 준비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경호처 지휘부에 대한 경찰의 고강도 수사를 감안하면 금주 집행이 점쳐진다. 공수처 관계자는 "선임계가 제출됐다고 체포영장 효력은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며 "영장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부분을 포함해 법리 검토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