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카드 사태 이후 최악의 소매판매… 올해도 '설상가상'

입력
2025.01.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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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소매판매 전 부문 2년 연속 동반 감소
1995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 있는 일
계엄·탄핵에 고환율까지… 내수 전망 '깜깜'
정부 재정 집중 투입에도 "추경 필요" 지적

지난해 재화 중심 소매판매 실적이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기준금리 인하로 올해부터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불법계엄 사태와 치솟은 환율 등 악재가 겹치면서 단기간 내수 회복을 기대하긴 어려워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을 살펴보면, 지난해 1~11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 감소했다. 과도한 신용카드 발급과 현금대출로 벌어진 2003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 당시 3.1% 하락한 이래 21년 만의 최대 내림폭이다.

소매판매의 전 부문 소비가 줄었다는 점에서 최근 상황은 심각하다. 해당 기간 자동차·가전 등 내구재(-2.8%), 의복 등 준내구재(-3.7%),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1.3%)는 전년에 이어 모두 꺾였다. 2년 연속 동반 감소는 1995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모든 상품군에서 전방위적으로 소비 침체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는 동반 감소 후 이듬해 증가 전환했다. 지난해 서비스 생산도 전년보다 1.5% 증가에 그쳤다. 2022년(6.9%)을 정점으로 2023년(3.4%)에 이어 오름폭이 둔화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회 연속 금리를 인하하면서 장기 고금리에 눌려있던 가계 여력에 숨통이 트일 것이란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1.2% 수준이었던 민간소비 증가율을 두고 한은은 올해 2%로,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8%로 개선될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나 불법계엄 사태, 탄핵 정국 장기화에 소비심리는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비 12.3포인트 하락했다.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3월 18.3포인트 감소 이래 최대 낙폭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서 2016년 10월부터 3개월간 9.4포인트 낮아진 것보다 가파르다.

가뜩이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 대내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가중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점도 악화 요인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환율이 1,400원 이상으로 유지되면 유가 등 수입물가가 오르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실질소득을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상반기에 올해 예산의 75%를 쏟는 등 내수 회복 기치를 올렸지만, 한 번 가라앉은 소비심리를 수습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내수 부진 완화가 예측됐던 지난해 편성된 예산안이라 한계가 있다"며 "변화한 상황에 맞게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기 위해 추가경정(추경) 예산 편성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소비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검토에 들어간 '27일 임시공휴일 지정'과 관련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은 소비가 해외여행으로 쏠릴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설 연휴가 끝난 뒤인 31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세종=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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