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이 모친상을 당했다. 커피를 많이 좋아하는 친구를 따스하게 위로하고 싶어서, 커피를 챙겨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식당 한쪽에서 커피를 내렸고, 그 향에 관심을 보이던 친구의 가족들도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지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던 친구의 오빠가 내게 다가와 엄지를 세우며 한마디 했다. "커피가 뒤끝이 있네요." 살짝 당황했지만, 나이 지긋한 오빠의 엄지 척이 '맛있다'는 의미인 것만은 눈치챘다. 친구의 설명인즉, 커피의 '쓴맛이 깔끔하고 향기가 입안에 오래 감돌아서 좋다'는 뜻이라고 했다. 종종 경험했던 탁하고 불쾌한 텁텁함이 없어서 좋아하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좋은 커피의 가장 큰 특징으로 '여운이 좋은' 걸 꼽는다. 여운이 좋지 않은 커피는, 로스팅 전의 생두가 열화되거나 로스팅이 잘못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곡물의 경우(커피 생두 포함), 성분 중 지질이 산화되었을 때 이를 열화되었다고 한다. 한번 열화된 생두는 로스팅을 아무리 잘 해도 맛있어지지 않는다. 쉬운 예로 햅쌀이 시간이 지나 열화된 상태(묵은 쌀)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육안으로도 알 수 있고, 지은 밥의 쿰쿰한 냄새로도 금방 알 수 있다. 주식이 밥인 우리에게는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밥을 먹어온 역사, 즉 '식력(食歷)' 덕이다.
그러나 커피는 비교적 최근 우리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음식이다. 보고 냄새 맡는 것만으로 단번에 품질을 구별해 낼 만큼 식력이 쌓이지 않았다. 다만 좋은 커피에서는 기분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담뱃재 쩐내' '상한 기름내' '볏짚 냄새' 등이 느껴지면 안 좋은 커피다. 이는 경험이 없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음식 공통의 기준이기도 하다.
경험한 적 없는 맛을 한눈에 판별하기란 쉽지 않다. 청각이나 시각과 달리 미각은 학습을 통해 단련되는 감각이므로, 절대음감 같은 절대미각이라는 행운도 존재하기 어렵다. 경험을 통해서만 기억되는 정직한 감각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쓴맛은 경험으로 터득해 즐길 수 있게 되는 맛 중 하나다. 아이들은 아직 쓴맛에 대한 경험이 없어,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하지만 자라나면서 식력이 조금씩 쌓이고, 좋은 쓴맛을 구별해내는 능력이 생기면서 그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된다.
조문하고 돌아오는 길, 눈발이 흩날렸다. '끝맛이 좋은' 쌉싸래한 봄나물이 몹시도 먹고 싶어졌다. 냉이, 달래, 두릅의 쌉싸레한 그 맛, 여운…. 엄혹한 이 겨울 지나 빨리 봄이 오면 좋겠다. 봄나물에 참기름 넣고 무쳐 우걱우걱 맛있게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