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위기설 겪은 신동빈 "지난해, 그룹 역사상 가장 힘들었다"

입력
2025.01.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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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VCM 개최, 최고 경영진 80인 참석
"어려움 원인, 외부 아닌 우리 경쟁력 저하"
"해외 시장, 성장 위해 가장 중요한 목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9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한데 모은 자리에서 "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외부 환경이 아닌 우리 핵심 사업의 경쟁력 저하"라며 "지금의 변화의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대혁신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4년 말 유동성 위기설로 홍역을 치른 후 인적 교체, 비주력 계열사 매각 등을 단행한 롯데그룹이 올해 더욱 강도 높은 쇄신으로 체질 개선에 나설지 주목된다.

롯데그룹은 이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상반기 VCM(사장단회의)을 가졌다. 롯데가 매년 상반기, 하반기에 두 차례 갖는 VCM은 사업군별 대표, 계열사 대표 80여 명이 참석하는 최고위급 회의체다.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부사장도 회의에 나왔다.

롯데는 네 시간가량 진행된 회의가 시종일관 엄중한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이 "지난해는 그룹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한 해"라고 평가했듯 유동성 위기설을 겪으면서 그룹 전체에 깔린 경각심이 이날 회의에서도 엿보였다. 지난해 상반기 VCM 회의와 비교해 열흘 정도 앞당긴 일정도 그룹 전체를 향한 경영 메시지를 서둘러 전파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롯데는 유동성 위기설이 번진 후 자구책을 선제적으로 내놓으면서 재무 건전성을 향한 투자자, 시장의 우려를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위기설의 진원지인 롯데 화학군 CEO 13인 중 10인을 교체한 게 대표적이다. 또 알짜 계열사이나 그룹 전체적으로 보면 비주력인 롯데렌탈을 사모펀드에 1조6,000억 원에 매각하면서 유동성을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며 "과거 그룹 성장을 이끈 사업들도 새로운 시각에서 조정을 시도해달라"고 최고 경영진에게 쇄신을 주문했다.

위기설을 잠재우며 한숨 돌렸지만 사업군별로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롯데그룹 주력인 롯데케미칼은 2022년부터 계속 영업 손실을 기록 중이고 유통군도 2023년 연간 매출이 전년 대비 줄어드는 등 실적이 부진하다.

신 회장은 특히 "국내 경제, 인구 전망을 고려했을 때 해외 시장 개척이 그룹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신규 글로벌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착한 롯데쇼핑몰처럼 성공적인 해외 사업을 찾아달라는 주문으로 보인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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