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려는 방안으로 5세대 실손보험을 마련하면서, 1·2세대 실손 가입자를 대상으로 5세대 실손으로 전환을 추진한다. 하지만 전체 가입자의 44%에 달하는 1·2세대 가입자로선 보장 범위가 줄고 자기부담금이 커지는 5세대 실손으로 갈아탈 이유가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약관 변경 없는 초기 가입자는 전체 실손 가입자의 44%인 1,582만 명에 달한다. 실손보험은 △2009년 9월 이전의 1세대 △2009년 10월~2017년 3월의 2세대 △2017년 4월~2021년 6월의 3세대 △2021년 7월 이후 나온 4세대로 나뉜다. 1세대의 경우 손해보험 상품 기준으로 자기 부담률이 없어 의료비 전액을 보장한다. 비급여 치료도 제한 없이 보상받는다. 2세대는 자기 부담률이 10~20% 오르지만, 4세대의 30%(비급여 특약) 대비 가입자 부담이 적다. 3세대부터는 비급여 도수치료 등을 보상받으려면 별도 특약에 가입해야 한다. 4세대 실손은 비급여 자기 부담금이 더욱 높아졌다.
2013년 이전 판매된 1세대와 2세대 실손보험 일부는 재가입 주기도 없다. 처음 가입한 약관대로 100세까지 보장받는다는 뜻이다. 반면 2013년 이후 가입한 2세대 일부와 3세대의 경우 재가입 주기가 15년이고 4세대는 5년이다.
이번에 공개된 5세대는 4세대보다도 비급여 보장 한도가 축소되고 자기 부담금은 크게 오른다. 도수치료 등 일부 항목은 자기 부담률이 90∼95%에 이른다. 비중증·비급여 질환에 대해 4세대는 5,000만 원까지 보상하는데, 5세대에선 1,000만 원으로 대폭 축소된다. 또 경증 통원 치료는 기존 회당 20만 원에서 하루 20만 원까지만 보장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의료계는 이번 실손 개혁에 강하게 반발한다. 자기 부담금이 오르는 만큼 비급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봉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정상적인 치료로는 병원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실손에서 보상받게 한 것은 정부"라며 "원가 보상을 먼저 하고 실손을 개혁하는 것이 맞는 순서"라고 주장했다.
반면 보험업계는 과잉 진료·의료 쇼핑 문제를 해결하려면 실손 개혁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가입자의 9%가 전체 보험금의 80%를 수령했다. 실손 보험의 손해율이 2022년 117.2%, 2023년 118.3%, 지난해 상반기 118.5%로 꾸준히 오르는 것도 부담이다.
금융위는 개혁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약관 변경이 없는 1·2세대 가입자에게 보험사가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계약을 해지하게 한 뒤 5세대에 재가입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보험료 수준도 4세대 대비 최대 50% 인하된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5세대 실손의 보장이 대폭 줄어드는 만큼 1·2세대 가입자가 전환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4세대 실손 출시 때도 1~3세대 가입자를 대상으로 1년 치 보험료를 50% 할인해 주는 등 혜택을 줬지만 전환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가 법 개정을 통해 1·2세대 실손의 약관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점도 논란이다. 정부가 기존 가입자의 이익을 줄이는 방향으로 약관을 변경하겠다는 뜻이어서 법적 분쟁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국은 그동안 보험사들이 기존 가입자를 새 보험으로 가입을 유도하는 승환 계약에 엄중히 대응했던 것을 생각하면 약관 변경은 모순적"이라며 "기존 가입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약관이 변경될 경우 반발이 크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