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결국 ‘중범죄자’ 딱지 달고 미국 대통령 취임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성추문 입막음 돈(허시 머니) 지급' 형사 사건 형량 선고가 애초 일정대로 10일(현지시간) 내려지게 됐다. 미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직의 정상적 수행'을 명분으로 내세운 트럼프의 선고 연기 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다만 대통령직 수행 자체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이 사건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이 내려지긴 했으나, 담당 판사는 최근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자 신분을 고려해 '징역형 등 선고 배제' 방침을 밝힌 상태다. 그렇다 해도 트럼프로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중범죄자(Felon)' 꼬리표를 달고 대통령에 취임하는 불명예를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9일 미국 CNN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미 연방대법원은 '허시 머니' 사건 1심 선고를 유예해 달라는 트럼프의 요청을 대법관 5대 4 의견으로 기각했다.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에 더해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기각에 찬성한 결과다. 대법원 결정 후 트럼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판사가 지어낸 가짜 혐의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정적을 상대로 사법 시스템을 무기화했다"며 1심 선고 후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의 혐의(기업문서 조작 34건)가 중범죄이긴 하나,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없다. 재판장인 뉴욕 맨해튼형사법원의 후안 머천 판사는 지난 3일 결정문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을 고려해 유죄 판단을 유지하되, 징역이나 보호관찰 처분을 내리지 않는 '조건 없는 석방(Unconditional discharge)'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의 '명예'엔 커다란 흠집이 나게 됐다. CNN은 "이번엔 대법원이 돕지 않아 트럼프는 굴욕을 견뎌야만 하게 됐다"며 "트럼프는 '형사 유죄' 판결이 기록된 상태로 취임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NYT도 오는 20일 취임식을 하는 트럼프가 '형량 선고'라는 창피한 광경을 피하기 위해 '선고 연기 신청'을 세 차례나 한 사실을 거론한 뒤, "백악관을 차지한 '전과자 1호'라는 트럼프의 (불명예스러운) 지위가 공고해졌다"고 짚었다. 대법원 심리 과정에서 트럼프가 '보수 성향' 새뮤얼 얼리토 연방대법관과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7일 두 사람이 통화한 지 몇 시간 후에 트럼프의 '선고 연기' 신청서가 대법원에 접수됐기 때문이다. 얼리토 대법관은 "다른 사람의 채용 관련 문의 전화였고, 사건 얘기는 전혀 없었다. (트럼프가) 선고 연기 신청서를 낼 예정이라는 것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제이미 래스킨 미 하원 법사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NYT에 "사법부와 이해관계가 있는 트럼프가 대법관과 통화했다는 것만으로도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얼리토 대법관이 스스로 심리를 기피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얼리토 대법관은 실제로 '선고 연기'에 찬성하며 트럼프 손을 들어줬다. 트럼프의 악재는 또 있다. 미 제11연방순회항소법원은 이날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수사해 트럼프를 기소했던 '2020년 대선 뒤집기 시도' 사건의 수사보고서를 공개하면 안 된다는 트럼프의 요청을 기각했다. 현대 미국 민주주의의 최대 상처로 꼽히는 1·6 의사당 폭동 사태와 맞물려 있는 이 사건으로 트럼프는 '미 역사상 첫 연방 기소를 당한 역대 대통령'이 됐다. 대선 승리 후 기소 자체가 무효화됐지만,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불법 행위가 조만간 대중에 낱낱이 공개되게 된 셈이다. 법무부는 이미 공개 방침을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