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파괴하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입력
2025.01.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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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신샘이·이용석, '기후 상처'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 동기를 '작열하는 태양'이라고 말한 주인공은 그날을 이렇게 묘사한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됐고, 번쩍하는 긴 칼날 같은 것이 되어 내 이마를 쑤셨다."

3명의 정신과 의사가 쓴 책 '기후 상처'에 태양과 범죄의 관계를 다룬 문학 일화가 등장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뜨거운 태양이 주인공에게 살인 욕구를 촉발했는가" "태양이 인간에게 그런 욕망을 불어넣는 것이 가능한가"를 묻고 "그렇다"고 답하기 위해서다. 저자들에 따르면 최근 기후와 연관된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간접적 환경으로서 뜨거운 태양이 인간의 충동을 오작동하게 만든다는 근거를 찾아냈다.

저자들은 극단적 기후 현상인 폭염과 폭우, 가뭄, 산불 등이 불안, 우울, 자살 등 심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가령 햇빛이 뜨거운 여름에 폭력과 범죄가 증가한다. 미국의 시위는 대부분 무더운 여름에 일어났다. 기후로 인한 재난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불안증을 일으키고 기후 난민을 양산한다. 이상 기후의 예측할 수 없는 특성으로 인한 심리적 안정감 상실, 신체적 질병도 두드러지고 있다.

기후 위기가 불안과 슬픔, 분노를 촉발하고 질병까지 초래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부정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상 기온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이해관계에 따라 이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려는 심리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 심각한 증상을 부정하면서 병을 악화하는 인류에게 내리는 저자들의 진단은 명확하다. "기후 위기를 '인정'하자. 그리고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