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재명은 송강호에게 "선배님, 삶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50대가 됐더니 막막합니다"라고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다. 송강호는 "인내해라"라는 묵직한 한마디를 건넸다. 유재명은 당시 송강호가 했던 말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큰 파도가 됐다고 했다.
최근 유재명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영화 '하얼빈'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유재명은 독립군 최재형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그는 '하얼빈' 무대인사 중 객석에서 보내는 눈빛, 박수에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감동적인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어머니가 아이를 데려와 영화를 보며 태극기를 흔들어 주시는 경우도 있었다. 태극기를 정성스럽게 그려 가져 오신 분도 있었다"는 게 유재명의 설명이다.
그는 '하얼빈' 출연을 제안받고 최재형기념사업회 측의 메일을 받았다. 최재형에 대해 아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세세한 정보들까지 담겨 있는 메일이었다. 유재명은 실제 역사 속에서 굵직한 역할을 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앞두고 부담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초상화를 봤을 때 나랑 닮았더라. 조금 안도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다만 '이 분의 일대기 속 신념, 아픔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있었다"는 유재명의 이야기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유재명이 출연한 '하얼빈'과 '소방관'은 현재 모두 극장가에서 사랑받고 있다. 유재명은 '소방관'과 관련해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구하는 분들의 희생,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방관'과 (배경이 되는) 시대는 다르지만 '하얼빈' 역시 희생, 숭고함에 대한 이야기다. 두 영화가 순차적으로 잘 돼서 감사하다. 연말에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에서 영화를 보신 분들에 감동을 줄 수 있어 감사했다. 배우로서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배우로서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직감에 의존한단다. 유재명은 "작품의 메시지가 가슴에 들어오면 (출연)한다. 캐릭터의 비중, 호감도보단 작품의 매력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삶에 깊이 새겨질 작품'을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유재명은 1년에 7, 8편 정도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는 자신이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고, 주어진 작품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바쁘게 달려오던 유재명은 어느덧 50대 초반이 됐다. 유재명이 송강호에게 "50대가 됐더니 막막하다"고 털어놓자, 송강호는 "인내해라"라는 조언을 건넸다. 유재명은 "선배님의 말씀이 큰 파도가 됐다.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7세가 된 아들이 아빠의 직업을 자세히는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아빠가 집에 잘 안 들어온다는 것만 안다"는 유재명의 이야기는 인터뷰 현장을 웃음으로 물들였다. 유재명은 "'하얼빈'이 매년 뜻깊은 날마다 TV에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TV를 보면서 배우로서 뿌듯함과 영광스러움을 느낄 것 같다. 아들이 '아빠, 맨날 늦게 오는 줄 알았더니 멋있어'라고 하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그의 말에서는 '하얼빈'을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한편 '하얼빈'은 지난달 24일 개봉해 누적 관객 수 406만 명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