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시 공무원들은 메모가 즐겁다. 부드러운 소재에 '그린오로라'(2025년 서울색)를 활용한 2025년 새해 업무수첩 '서울플래너 2025'가 출시된 덕. 초록빛의 오로라 느낌을 구현한 홀로그램 박의 표지, 서울시 대표 캐릭터 '해치&소울프렌즈'가 그려진 내지, 나열식이 아닌 삽화로 풀어낸 시정 현황. 관공서용 업무수첩의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 서울시 업무수첩 디자인과 제작에는 공무원도 직접 참여했다. 정기열(46) 홍보담당관 주무관과 오제윤(34) 총무과 주무관이 그 주인공이다.
표지에 조그마한 로고가 전부였던 단조로운 업무수첩은 도시브랜드 'Seoul, My Soul(서울, 마이 소울)'이 발표된 지난해부터 탈바꿈했다. 직원들이 매일 들고 다니며 사용하는 수첩에도 서울만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담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이때 광고대행사에서 10년 넘게 아트디렉터로 일하다 2017년 서울시에 온 정 주무관이 나섰다. 밋밋한 수첩 표지를 폴리염화비닐(PVC) 소재로 바꿨고, 'Seoul, My Soul' 브랜드를 전면에 배치하면서 실버·핑크·파랑·노랑 등 톡톡 튀는 색을 입혔다. 정 주무관은 "후가공 작업으로 투톤 색감을 구현하고, 쨍한 컬러를 통해 다채로운 서울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며 "신선한 디자인을 위해 정보기술(IT) 기업 등 다른 회사의 업무수첩도 찾아보면서 고심했다"고 말했다.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진행한 사전 예약 판매에서 당일 바로 동이 날 만큼 시청 밖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일부 5060세대 직원들 사이에서 "업무수첩이 너무 가벼워 보인다" "PVC 재질이 너무 날카로워서 불편하다"는 평이 나와 '서울플래너 2025'는 다양한 연령대가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보완했다. 지난해 처음 플래너 제작에 뛰어든 오 주무관은 "디자인은 취향을 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정해진 예산과 촉박한 시간 안에서 합의점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정 주무관과 오 주무관은 지난해 7월부터 꼬박 반년간 업무수첩 제작에 매달렸고, 5차례에 걸친 디자인 검토 끝에 결국 정 주무관의 아이디어로 최종 디자인이 확정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표지에 들어가야 하는 그린오로라 색상과 일치하는 홀로그램 박이 쉽사리 구해지지 않았다. 두 주무관은 업체 곳곳에 전화를 돌렸고, 충무로 인쇄골목을 십 수번 헤맸다. 정 주무관은 "대구에 있는 업체에 겨우 연락이 닿았는데, 제작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좌절하기도 했다"며 "다행히 막판에 색이 비슷한 홀로그램 박을 충무로에서 찾아냈다"고 말했다.
결국 스웨이드 가죽 느낌이 나는 폴리우레탄(PU) 재질의 검은색 바탕에 그린오로라 색이 감도는 홀로그램 박으로 'Seoul, My Soul'과 '2025'를 새겨 밤하늘에 초록별이 빛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업무수첩이 탄생했다. 출시와 동시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스벅(스타벅스) 다이어리보다 예쁘다"는 칭찬이 쏟아졌고, 간부들도 "고급스러우면서도 무게감 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정 주무관은 9년째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디자인에서 '관공서답지 않은 세련된 감각'을 살리는 데 역점을 둔다고 한다. 그는 "평소 공익 광고의 중요성을 많이 체감하고, 서울시민이라는 자부심이 큰 만큼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며 "너무 파격적이라는 우려를 듣더라도, 관공서의 틀을 깨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덕에 좋은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 주무관도 "공무원뿐만 아니라 시민, 관광객도 서울시의 가치와 매력을 담은 서울플래너를 많이 사용하시면 좋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