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비스를 공공재로 분류하고 관련 업체 규제를 추진했던 미국 민주당 정권의 '망 중립성 정책'이 결국 최종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미 연방법원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망 중립성 규제 재도입과 관련, '권한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약 20년간 미국과 전 세계 산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망 중립성' 논쟁이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통신망 사업자들의 인터넷 서비스 지배력도 더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 오하이오주(州) 신시내티의 제6연방항소법원은 이날 "연방통신위원회(FCC)에 망 중립성 원칙을 복원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망 중립성 원칙에 근거한 규제를 폐기하라는 결정이었다.
'망 중립성'이란 2003년 미국의 미디어법학자인 팀 우 컬럼비아대 교수가 도입한 개념이다. 인터넷이 사회 핵심 인프라로 떠오른 만큼, 모든 콘텐츠 생산자·소비자가 '평등한 망 접근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를 제도화한 것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2009~2017년 재임)다. 인터넷 통신망을 갖고 있던 한 미국 케이블TV 사업자가 경쟁 채널의 온라인 접근을 제한하면서 촉발된 권한 남용 논란이 계기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5년 "개방된 인터넷은 미국 경제에 필수적"이라며 망 중립성 규칙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자 통신망을 제공하는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들이 거칠게 반발했다. "과도한 규제가 통신망 혁신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게 이들 주장이었다. 특히 넷플릭스·페이스북 등 데이터를 많이 소비하는 거대 콘텐츠 기업으로부터 추가 사용료를 징수해 망 보강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규제 철회를 지지하는 공화당은 ISP를 지원했다.
이후 망 중립성 정책은 정파적 갈등에 시달렸다. 오는 20일 집권 2기를 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첫 재임기 때인 2017년 망 중립성 규제를 폐기했다. 미국뿐 아니라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규제 재도입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지난해 4월 FCC가 규제를 부활시켰다.
이날 법원 판결은 일단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대한 제동'이다. 망 중립성에 대한 찬반이라기보다는, 현 FCC에는 '규제 부활 권한'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6월 미 연방대법원이 '셰브론 원칙'(미국 연방정부의 폭넓은 규제 권한을 인정한 1984년 판례)을 폐기한 게 주요 근거가 됐다. 따라서 대통령 행정명령이 아니라, 의회 입법을 통해 망 중립성 규제를 재도입하는 것은 이론상 가능하다.
하지만 당분간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3일 새로 출범하는 미국 제119대 의회에서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공화당은 망 중립성 개념 자체에 반대한다. 입법 동력 자체가 없는 셈이다. 또 시민단체 등에서 재심을 요구한다 해도 보수 우위 구도인 연방대법원에서 기각될 게 유력하다. NYT는 "인터넷망 사업자를 '공공 서비스 제공업체'로 보고 규제를 가하려는 20년간의 노력에 법원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당에 큰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파장은 상당할 전망이다. 인터넷 통신망 업계는 "인터넷 망 혁신에 집중하겠다"며 환영한 반면, 소비자단체들은 "법원이 일부 기업의 이익을 편들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다른 분야의 규제도 줄줄이 폐지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