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틱톡 방 빼고, 무명 中스타트업 대거 늘었다... 미중 갈등도 드러난 CES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5' 개막을 이틀 앞둔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센트럴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의 위상을 반영하듯, 입구에 들어서자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글로벌 가전 업체의 부스들이 밀집해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국 TV·가전 기업 TCL의 초대형 부스도 막바지 설치 공사에 한창이었다. 지난해에도 행사장 입구 앞에서 초대형 퀀텀닷 미니 발광다이오드(LED) TV를 전시하고 관람객을 맞았던 TCL은 올해는 LED를 얼굴과 몸통에 탑재한 초거대 로봇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었다. 매년 마감이 덜 되거나 완성도가 조악한 전시품으로 논란을 낳았지만, 올해 역시 내실보다는 화려함으로 승부하려는 듯했다. TCL 부스를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세계 TV 시장 2위 업체인 중국 하이센스의 부스가 보였다. 하이센스도 초대형 디스플레이로 장식한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마다 CES에 참가하는 중국 기업 수와 면면은 CES의 최대 관심거리 중 하나다. 올해 중국에서는 약 1,340개의 기업이 CES를 찾는다. 1,100여 곳이 참가했던 지난해보다 약 20% 늘어났다. 개최국인 미국(1,509개 기업)을 제외한 국가 중에서는 가장 많은 업체가 참가했다. 세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맹렬히 추격 중인 하이센스, TCL은 올해도 어김없이 출석 도장을 찍는다. 중국 전기차 샤오펑의 자회사 샤오펑에어로HT는 하늘을 나는 전기차 '랜드 에어크래프트 캐리어' 실물을 이번 CES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유명한 중국 대기업은 이들 업체 정도다. 표면상 올해 중국은 과거 CES에서 보였던 막강한 영향력을 회복한 듯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내실 있는 기업보다는 '이름을 알리려는' 무명 업체의 참가만 크게 늘었다. 수년째 악화하고 있는 미중 간 기술 패권 갈등이 올해 CES에서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나타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CES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전시회 이름의 가장 앞글자 'C'를 "소비자(consumer) 대신 중국(China)으로 바꿔야 한다"는 비아냥까지 받을 만큼,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러나 올해 CES의 중국 기업 수는 역대 최다였던 2018년(1,551개)에 비하면 여전히 300개 이상 적다. 특히 중국을 대표하는 기술 대기업은 올해 CES에서 모조리 자취를 감췄다. 팬데믹 여파로 480여 개 중국 기업만 참가했던 2023년과 지난해 잇따라 전시관을 꾸렸던 중국계 짧은 동영상(쇼트폼) 플랫폼 틱톡이 올해엔 아예 자리를 뺐다는 건 상징적이다. 팬데믹 이전까지 CES에 참가했던 바이두, 미국 제재를 받고 있는 화웨이와 드론 제조사 DJI 등도 불참했다. 샤오미, 하이얼, 창훙 같은 중국 간판 기업들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 CES에 참가한 세계 시장 1위 중국 기업은 로봇청소기 업체 로보락 정도뿐이다. 한국 가전 업계 관계자는 "하이센스와 TCL 때문에 중국 기업들의 존재감이 큰 듯한 착시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두 기업은 (한국 기업들의 경쟁사일 뿐) 미국 입장에서 견제 대상이 아니다"라며 "미국 기업과 경쟁하거나 미국 정부가 기술력 강화를 우려하는 중국 업체는 대거 불참하고 비교적 덜 알려진 스타트업 위주로 참가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미 올해 CES 전부터 전조는 있었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등은 지난달 CES에 참가할 예정인 중국 기업 측 직원 상당수가 미국 비자 발급을 거부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CES 주최 측인 소비자기술협회(CTA) 측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음에도 사실상 미국 입국 자체가 무더기로 차단된 것이다. 올해 미중 갈등이 더 첨예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내년 CES에서는 눈에 띄는 중국 기업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게 테크업계의 예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 전 대(對)중국 첨단 기술 추가 규제를 발표할 가능성이 크고, 이달 중 이른바 '틱톡금지법'도 발효될 예정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취임 후 모든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다른 전망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CTA 측에서 강하게 항의해 행사 직전에야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비자 발급이 대거 이뤄졌다는 말도 들린다"며 "중국 기업들로선 CES에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CES 입장에선 중국 기업들이 (대거) 빠지는 게 치명타인 만큼 전시회 존립을 위해 견제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전자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의 이탈은 한국에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