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 새 대통령 취임한 조지아... 전임자는 "내가 유일·합법 대통령" 주장

입력
2024.12.30 09:01
'극우' 미하일 카벨라슈빌리 대통령 취임
주라비슈빌리 전 대통령 "재선거 실시를"
미국·EU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 제기

조지아에서 친(親)러시아 성향 전직 축구선수가 신임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친서방 성향 전직 대통령이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수도 트빌리시에서는 새 대통령 취임에 반대하는 시민 수천 명의 시위가 벌어졌다.

2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미하일 카벨라슈빌리 신임 조지아 대통령은 이날 의사당 본회의장에서 조지아 역사상 처음으로 비공개 취임 선서를 했다. 지난 14일 대선에서 승리한 카벨라슈빌리 대통령은 친러 성향을 띠는 극우 성향 정당인 '조지아의 꿈' 소속으로, 과거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에서 뛴 축구 선수 출신이기도 하다. 조지아의 유럽연합(EU) 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카벨라슈빌리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 역사는 조국과 전통을 수호하기 위한 수많은 투쟁 끝에 평화가 항상 조지아 국민의 주요 목표이자 가치 중 하나였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소 성소수자(LGBTQ+)를 비하하고, 서방 정보기관이 조지아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극우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전임 대통령은 카벨라슈빌리 대통령을 후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날 퇴임한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전 조지아 대통령은 신임 대통령 취임식 직전 대통령궁을 나서며 "나는 여전히 유일한 합법적 대통령"이라며 "나는 대통령궁을 떠나지만 여러분과 함께 서 있겠다"고 말했다.

주라비슈빌리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번 대선이 부정 선거였다고 주장한다. 2017년 내각제로 전환한 조지아는 이번에 처음으로 간접 선거 방식의 대선을 치렀는데, 지난 10월 총선에서 '조지아의 꿈'이 득표율 54%를 기록해 승리함에 따라 이달 14일 같은 당의 카벨라슈빌리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곧바로 논란이 일었다. 미국과 EU에서 '러시아가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EU 가입 협상까지 전면 중단되자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주라비슈빌리 전 대통령은 "(불법 선거를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실시하는 게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조지아는 2008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줄곧 러시아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조지아에서 대통령은 실질적인 권력이 없는 상징적 국가원수 역할이지만, 주라비슈빌리 전 대통령은 야권의 상징적 지도자이자 반(反)러시아 세력의 중심 인물로 여겨진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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