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추진에 국민의힘은 "한덕수가 아닌 대한민국 탄핵", "제2의 외환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며 한껏 핏대를 세웠다. 그러나 여권이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불가'라는 논리를 고수하는 통에 사상 초유의 대행 탄핵 사태를 야기했다는 책임론 역시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도 모자라 헌법재판소를 흔들어 탄핵 심판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여당의 노골적 시간 끌기 행보에 당내에서도 비판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한덕수 탄핵 데드라인을 하루 앞둔 26일 국민의힘과 한덕수 권한대행은 미리 각본이라도 짠 듯 한 몸처럼 움직였다. 시작은 여당이었다.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및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국회 몫 추천 헌법재판관 3인(조한창·정계선·마은혁) 임명을 함부로 강행하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자체가 논란이 있으니, 3인이 참여한 탄핵 심판은 추후 정당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주장으로, 사실상 탄핵 심판을 무력화하는 발언이다. 권 원내대표는 "한 권한대행은 민주당의 협박에 따라 재판관을 임명하면 안 된다"는 협박도 날렸다.
2시간 뒤 한 권한대행은 "여야가 합의할 때까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즉각 화답했다. "내란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야당이 극렬 반발하는 상황에 여야 정치력을 주문하며 공을 또다시 국회에 넘긴 것이다. 결국 국민의힘과 한 권한대행의 '합작'으로 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높아졌다. 총 9명 체제인 헌법재판소는 현재 '국회 추천 몫' 3명이 공석이다. 윤 대통령 탄핵 결정에는 헌법재판관 6인의 찬성이 필요한데, 지금은 1명만 반대해도 기각되는 구조다. 앞으로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정당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론 분열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권은 한덕수 탄핵안 통과 이후에도 탄핵 불복을 예고하며 국정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당장 국민의힘에선 권한대행 탄핵안 의결정족수 논란을 문제 삼아 헌법소원 및 권한쟁의 심판 등 각종 법적 카드를 다 꺼내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집권 세력이 탄핵 파국을 막아설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긴커녕 국정 혼란을 부추기는 자극적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무책임한 행보란 지적이 나온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명된 권영세 의원은 "권한대행 체제 탄핵으로 제2의 외환위기가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오히려 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공포감을 조장했다.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권한대행 탄핵은 국가경제 파괴, 한미동맹 한일외교 파괴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반발은 커지고 있다. 당장 국민의힘은 이날 3인의 헌법재판관 선출안 표결에 조직적 불참 방침을 정했으나, 친한동훈계인 조경태·김예지·김상욱·한지아 의원이 투표에 참석하며 반기를 들었다. 조경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헌법재판관 임명을 빨리 해서 빨리 (윤 대통령) 탄핵을 시켜야 하지 않겠나"라며 "비겁한 당론에 따르지 않겠다"고 지도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차기 대선주자들도 "헌법재판관 임명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며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당당하려면 임명해야 한다"(오세훈 서울시장), "임명하는 게 맞다"(안철수 의원), "대통령의 권한대행이기 때문에 대통령다운 결정을 지금 해야 하지 않겠냐"(유승민 전 의원) 등등 한 권한대행이 이제라도 헌법재판관 임명에 나서 권한대행 탄핵 사태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여야가 끝장 대치를 벌이면서 이른바 '쌍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둘러싼 국회 논의는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에서는 당초 야당이 아니라 대법원 등이 특검을 추천하는 제3자 추천 특검법으로 절충안을 만들어 역제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결국 아무런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