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항공권이 3만원?" LCC 저가 경쟁이 정비 부실 부른다
179명의 사망자를 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여파가 저비용항공사(Low cost carrier·LCC)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주항공뿐 아니라 전반적인 LCC가 저가 경쟁 속에 정비 비용을 줄이려다 안전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된 결과다. 국내 LCC 업계 20년 역사상 가장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태동한 LCC 시장은 세계적인 해외여행 수요 증가와 맞물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LCC는 △높은 항공기 가동률 △지상 대기 시간의 최소화 △기내서비스 유료화 등 비용 절감 전략을 통해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해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한편으론 승객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 관련 비용을 삭감하고 정비 부문을 외주화하면서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기도 했다. '안전의 외주화'로 인해 발생한 대표적인 참사가 1996년 미국 밸류젯(Valujet) 항공 592편 추락 사고다. 이 항공기는 마이애미에서 출발해 애틀랜타로 향하던 중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습지대에 추락했고, 승객과 승무원 110명 전원이 사망했다. 정비 외주 업체가 화물칸에 실어둔 화학 산소발생기에서 시작된 화재가 원인이었다. 참사 이후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여객기의 위험물질 운송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당시 밸류젯은 정비 인력을 자체적으로 고용하지 않고 외부 업체에 맡겨 안전 관련 비용을 대폭 절감하고 있었다. 이 항공사는 참사 발생 1년 전인 1995년 미군으로부터 군 인력 수송 항공사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당했을 정도로 이미 악명이 높았다. 2000년대엔 라이언에어(Lion air), 시티링크(Citylink), 바틱에어(Batik air) 등 인도네시아에서 설립된 항공사들이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냈다. 이에 미국은 2007~2016년까지 인도네시아 항공기의 미국 내 취항을 금지했으며, 유럽연합(EU) 역시 2007~2018년까지 자체적으로 인도네시아 항공기의 유럽 대륙 내 취항을 금지했다. 저비용항공사가 대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선 1945년 이래 100건 이상의 민간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고, 2,3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국토 크기에 비해 세계적으로 많은 LCC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을 비롯해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에어서울,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 등 7개에 달한다. 남한 면적의 98배에 달하는 미국과 맞먹는 수준이다. 시장은 작은데 경쟁은 과열돼 정비 투자가 계속 열악해지고 있다. 지난 8년간 국내 LCC 중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정비 인력 권고 기준인 '항공기 1대당 12명'을 충족한 곳은 단 두 곳(제주항공·이스타항공)에 불과했다. 제주항공은 12명을 겨우 넘어 '턱걸이' 수준이었고, 진에어·에어부산 등은 1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인원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역량 미달이란 지적도 나온다. LCC 정비사들은 엔진 수리가 필요할 정도로 주요한 결함이 의심되는 경우, 10건 중 7건(71.1%) 이상 자체 정비를 포기하고 항공기를 해외로 보내 수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베테랑 정비 인력 다수가 업계를 떠나면서 정비 인력 부족과 정비 역량 저하 문제가 한층 심각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행 중에 결함을 발견하고 회항해 돌아오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10월 4일 김포발 제주행 TW723편이 이륙 24분 만에 기내 연기 발생으로 회항했고, 10월 14일 다낭발 대구행 TW130편이 이륙 30분 만에 기체 결함으로 회항했다.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에서도 기체 이상으로 인한 긴급 회항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티웨이항공 HL8501편(A330-300)은 지난해 7월 운항 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특정 항공기가 국토부로부터 운항 정지 처분을 받은 것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앞서 티웨이항공은 운항 및 정비 규정을 철저히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섯 차례에 걸쳐 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항공안전 전문가는 이를 '정비 소홀 행태가 만성화된 결과'라고 봤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항공우주정책대학원장은 "정비사 3~4명이 해야 할 일을 1~2명 정도가 떠받치고 있는 상황"이라며 "회사 입장에선 3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2명 고용하고 일을 더 시키면서 초과수당을 주는 것이 비용 면에서 더 이익이기 때문에 인력 확충을 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황 원장은 "정비사의 숫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비에 투입되는 시간인데, 저가항공사들은 여객기 가동 시간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정비 시간을 최소한으로만 준다"며 "작은 결함 정도는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도록 정비사를 압박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정비가 길어져 비행기가 제때 뜨지 못하면 이후 비행 일정에 차질이 생겨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티웨이항공은 기체 결함을 이유로 이륙을 거부한 기장에게 '정직 5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지난해 1월 12년 차 기장 A씨는 베트남 깜라인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이륙을 준비하던 중, 브레이크 패드의 마모 상태를 알려주는 부품의 길이가 기준치 미만인 것을 발견하고 브레이크 교체를 요구했지만 제때 정비를 받지 못했다. 정비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륙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운항을 거부했는데, 이에 대해 티웨이항공 측은 "비행안전이 충분히 확보됐음에도 운항불가를 고수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정직 5개월 처분을 내렸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A기장에 대한 티웨이항공의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황 원장은 "국내 LCC에서 일하는 현직 기장들이 다들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라며 "모두가 시간에 쫓기며 일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비행 일정 자체를 지금보다 더 여유롭게 잡고, 정비시간을 넉넉하게 보장하는 한편 정비 인력 역량 강화에 더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국내 LCC업체들을 관리 감독하는 국토부에서도 안전 관련 기준을 더 엄격하게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