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저신용 기업용 대출 '정크론' 시장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2020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당시 생계 유지나 주택 구입을 위해 빚을 낸 개인들도 높아진 금리로 신용카드 연체에 빠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금융기관의 느슨한 대출 심사와 정부의 방임이 가계와 기업의 부실대출을 양산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보고서를 인용, "글로벌 정크론 시장의 디폴트가 2020년 말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이 중 대부분은 미국 기업"이라고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크론 디폴트 비율은 작년 10월부터 올해 10월까지 1년 새 7.2% 늘어났다. 정크론은 낮은 신용을 가진 기업에 변동금리로 제공하는 대출이다. 일반 대출보다는 높은 금리를 적용받지만 대출 승인은 쉬워 당장 자금이 급한 기업들이 주로 이용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당시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았던 기업들이 팬데믹이 끝난 후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자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매클린 UBS자산운용 신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FT에 "저금리 시절 대규모 대출이 이어졌고, 금리 인상으로 인한 상환 압박 현상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시기 0.25%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2022년 3월 인상을 시작해 지난해 7월 5.5%까지 올랐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 금리를 유지하다 올해 9월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했고, 지난 18일 금리를 4.5%까지 내렸지만 여전히 고금리라는 지적이 많다.
어려움을 겪는 건 개인도 마찬가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신용카드 및 자동차 대출 연체율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생계를 위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거나, 저금리를 이용해 집과 자동차를 구매한 사람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신용카드를 만들어 코로나19 대유행을 버텨냈던 아드리아나 보셔스는 WSJ에 "지금 돈을 더 많이 벌지만, (연체 금액을 갚아야 해) 생활은 오히려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팬데믹 시기 대출 심사가 과도하게 관대해 현재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루스 양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시장 분석 책임자는 FT에 "최근 몇 년간 대출 심사가 느슨해져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고, 몇 년이 지난 현재 투자자의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