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23일 심사가 완료된 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올해 5개 부문에 접수된 응모작은 총 7,212편. 응모 인원은 2,220명으로 지난해(2,008명)보다 212명 증가했다. 부문별로는 시 4,540편, 소설 751편, 동시 1,528편, 동화 268편, 희곡 125편으로 모든 부문에서 지난해보다 응모작이 고르게 늘었다. 올해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부흥기를 기대하는 소설 부문에서 지난해에 비해 100편 이상 접수됐다.
현실과의 간극을 좁혀가는 한국 문학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올해 신춘문예에서는 세태를 다룬 글이 주류였다. 시에서는 내면의 자기 고백보다는 정치와 자본주의, 기후 위기 등 현실적인 문제를 짚으려는 시도가 보였다.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신해욱 시인은 “공공적인 상상력이 시 안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12·3 불법 계엄 사태 이전인 2일이 신춘문예 응모 마감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시가 많았다”(진은영 시인)라는 점도 눈에 띄었다.
소설은 개인의 생계와 직결된 ‘먹고사니즘’에 밀착됐다. 소설 심사위원 조해진 소설가는 “극적이거나 낯선 공간이 나오기보다는 일상적인 하루를 사는 현실적인 소설이 다수”라며 “거주지나 돈, 직업 등 계급 차이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전반적이었다”고 전했다. 불안한 현실을 죽음이나 고립, 단절로 형상화하는 작품이 늘어난 데 대해 김금희 소설가는 “우리 사회가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마르고 건조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문제의식을 타인과 사회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해 내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는 한계도 수년째 지적됐다. 소설 부문 심사를 맡은 우찬제 문학평론가는 “현실을 감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만의 시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이 소설”이라며 “시대의 아픈 모서리를 응시하고 이를 소설로 푸는 과정이 독자에게 공감을 주고 함께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짚었다. 시 부문 심사위원 박소란 시인도 “유의미한 주제들이 표층적 차원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됐다”고 전했다.
동시와 동화에서도 동식물이나 자연물 등의 소재보다는 학교 등 일상의 경험이나 현실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아졌다. 동시 심사를 맡은 김개미 시인은 “산문처럼 긴 동시가 많아졌으나 언어를 정교하게 다듬은 작품은 줄었다”고 전했다. 동화 심사위원 김민령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아이디어로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되거나 성급한 마무리로 안타까움을 산 작품들도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응모작의 수준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 다른 부문과 달리 희곡에서는 “접수된 작품의 숫자는 예년보다 늘었지만, 가슴이 뛰거나 한눈에 좋다고 느끼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정진새 연출가 겸 극작가)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 연출가는 이에 관해 “지금이 예전의 관습과 새로운 자기 글쓰기라는 두 갈래로 나눠지는 희곡 쓰기의 전환기라서 그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희곡 심사위원인 김재엽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만큼 젊은 작가들이 느끼는 생존의 위협이 심각하다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며 “파국을 맞거나 냉소적으로 끝나는 작품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은 내년 1월 1일 지면에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