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나흘째 1,450원 선을 웃돌고 있다. 금융위기급 달러 강세에 우리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4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 주간거래 종가보다 4.4원 오른 1,456.4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최고치다. 15년 9개월 만에 처음 1,450원을 넘어선 19일 이후 4거래일 연속 고공비행 중이다. 이날 환율은 한때 1,457.4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최근 원화 값을 끌어내리는 가장 큰 요인은 '강달러'다. 내년도 미국 금리인하 속도가 더뎌질 것으로 예고되면서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렸다. 이날은 중국 위안화 약세까지 중첩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가 위안화를 위협했고 덩달아 원화 가치 하락까지 부추겼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 107 중반대에서 이날 108.16까지 올랐다.
연일 울리는 고환율 경보에도 한국은행은 "국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한은은 이날 발표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국내 금융기관의 복원력과 대외지급능력 등이 양호한 편이라고 진단했다.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도,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환율(상승)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으나 대외순금융자산 등을 봤을 때 금융기관 건전성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물경제를 고려하면 현재의 환율 수준은 우리 경제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와 금융권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한은의 보고서는 전체 흐름이 아니라 지금 당장 금융권의 재무 상황만 바라본 것"이라며 "환율이 높으면 원재료를 수입해 수출하는 기업의 경우 엄청난 타격을 입고, 결국 이 여파는 기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사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화도 현실이 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0월 말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70%로 전년 동월 말(0.55%) 대비 0.15%포인트 상승했다.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올해 11월 말 665조9,608억 원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9월 발표한 '중소기업 환율 리스크 분석 연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들은 환율이 1% 오르면 손해가 약 0.36% 증가한다.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든 건설업계에 환율 상승은 더욱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고환율에 따른 유가 상승이 치명적이다. 유가가 오르면 산업용 전기료도 오를 가능성이 높아 연쇄적 피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료가 오르면 시멘트나 레미콘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며 “건설 현장에서 장비를 가동하는 비용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항공업계, 정유업계, 여행업계 등도 환율 상승의 피해에서 예외는 아니다.
금융당국은 고환율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력에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연말 도입 예정이던 은행권 스트레스 완충 자본 규제 도입을 내년 하반기 이후로 연기했다. 이와 함께 은행에 수출 기업의 외화 결제 및 외화대출 만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은행연합회는 이날 환율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외화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특별대출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