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싸고 현 경영진과 갈등을 빚고 있는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은 최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 253만 주(발행주식총수의 12.3%)를 즉시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이 인적 분할 등의 방식을 통해 의결권을 되살리는 '자사주의 마법'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 국내 기업이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꼼수로 활용해 온 자사주의 마법이 내년부터는 근절된다.
금융위원회는 24일 주권상장법인 자사주 제도개선을 위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올해 12월 3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사주는 회사가 본인이 발행한 주식을 재취득해 보관하는 주식이다. 자사주 취득은 기업의 이익을 주주에게 현금으로 돌려준다는 점에서 배당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회사가 매입한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오용되는 등 문제가 제기돼 왔다. 기본적으로 자사주는 의결권・배당권・신주인수권 등 거의 모든 주주권이 정지되지만, 인적 분할에 관해서는 법령·판례가 명확하지 않아 자사주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A회사 지분 구조가 자사주 30%, 대주주 40%, 일반주주 30%로 구성돼 있으면 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의결권 비율은 4:3(57%:43%)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A회사를 인적 분할해 B회사를 만들 때 자사주에 신주를 부여하면 B사의 지분 구조는 A사 30%, 대주주 40%, 일반주주 30%가 된다. 자사주가 A사 지분으로 바뀌며 의결권이 생기는 셈이다. 대주주와 A사 지분을 합치면 B사 지배력이 70%로 높아진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0∼2021년 상장기업 인적 분할 193건을 분석한 결과 인적 분할 이후 지배주주의 신설회사 지분율은 45%로 분할 이전에 비해 11%포인트 상승했다. 존속회사가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에 신설회사 신주를 배정한 결과라는 것이 자본연의 설명이다.
이에 금융위는 인적 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제한하는 내용을 개정 시행령에 담았다. 또 자사주 관련 공시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앞으로 상장법인의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 수의 5% 이상이면 자사주 보유 현황과 보유 목적, 추가 취득이나 소각 등 처리 계획과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 공시해야 한다. 모든 상장법인이 자사주를 처분할 때는 처분 목적, 처분 상대방 및 선정 사유, 예상되는 주식 가치 희석효과 등도 구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확산 등으로 올해 자사주 취득 및 소각 금액이 전년 대비 각각 약 2.3배, 2.9배로 증가한 상황"이라며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오용되지 않고,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래 취지대로 운용되는 데 개정 시행령이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