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의정갈등… 굴곡진 열한 달을 삼킨 12월 밤의 계엄 [한국일보 선정 국내 10대 뉴스]

입력
2024.12.26 12:00
12면


①45년 만의 계엄령 선포... 윤 대통령 직무정지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오후 10시 29분 돌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의 일이다.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지목하며 "척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를 짓밟고 선관위를 장악했다. 하지만 여야가 합심해 6시간 만에 계엄을 해제하면서 민주주의를 지켰다. 탄핵안 통과로 윤 대통령은 취임 2년 7개월(949일) 만에 직무가 정지됐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남았다. 불법계엄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②한강,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10월 10일 오후 8시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인 소설가 한강의 이름이 불렸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자 2000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에 이은 한국인의 두 번째 노벨상 수상이다. 노벨재단은 한강의 작품을 두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심오하게 탐구했다"고 소개했다. 발표 엿새 만에 한강의 책은 100만 부 넘게 팔려나갔고 연말이 다 되도록 여전히 강세다.


③27년 만의 의대 증원과 의정 갈등

2월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결정했다. 내년 신입생이 의사 면허를 따는 2031년부터 2,000명씩 의사를 추가 배출해 2035년까지 부족한 1만 명을 채우겠다는 취지였다. 의사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전공의 1만 명이 병원을 뛰쳐나갔고 의대생은 휴학했다. 환자들은 거리 집회까지 열어 의료 정상화를 호소했다. 국립대 총장들이 제안한 증원 축소(1,509명) 중재안이 받아들여지고 하반기 수련 특례 등 여러 유인책이 마련됐지만, 전공의는 10개월째 비타협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의료공백도 현재 진행형이다.


④국민의힘 총선 참패… 尹 오만함에 무너졌다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전체 300석 가운데 108석에 그쳤다. 개헌 저지선을 겨우 지켰다. '한동훈 체제'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내외를 향한 거부감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대파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논란이 표심을 휩쓸었다. 이후 국정 주도권을 상실한 윤 대통령은 거부권에 의존하는 '비토 정치'에 매몰됐다. 특히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고조되면서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치달았다.


⑤한국은행, 3년 2개월 만의 기준금리 인하

10월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8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물가와의 싸움을 위해 2021년 8월부터 이어온 통화긴축 기조가 1년 9개월의 동결 기간을 거쳐 막을 내린 것이다. 9월 물가 상승률이 1%대로 떨어지면서 안정 궤도에 진입하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진정 조짐을 보이자 한은도 마침내 방향 전환을 결단했다. 한은의 무게 추가 금융 안정에서 경기 하방 위험 방어로 이동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⑥다시 5만전자... 삼성전자 위기

2023년 반도체 어닝 쇼크가 2024년 삼성전자 위기론으로 번졌다. 인공지능(AI) 투자 붐을 타고 경쟁사들이 호황을 누린 데 반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기술 경쟁력을 잃은 삼성전자는 3분기(7~9월)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전영현 부회장이 사과문까지 냈지만 외국인 등이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내다 팔며 국장(한국 주식시장) 외면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12월 주가는 액면분할을 실시한 2018년 수준인 주당 5만 원대다.


⑦尹 통화기록 나왔지만… 진실 규명 갈 길 먼 '채 상병' 의혹

해병대 1사단 소속 채모 상병이 지난해 7월 19일 수해 실종자 수색작업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임성근 1사단장이 책임자로 지목됐지만, 그의 이름은 경찰로 이첩된 군 초동 조사 기록이 돌연 회수되고 재이첩되는 사이 혐의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사건 회수 당일 윤석열 대통령의 통화기록이 공개되면서, 그가 수사 외압의 정점에 있다는 의혹이 짙어졌다. 공수처 수사는 사건 발생 1년 반이 지났지만 지지부진하고, 국정조사는 간신히 첫발을 뗐다. 진실 규명까지 갈 길이 멀다.


⑧청소년에 독버섯처럼 퍼진 '딥페이크 성착취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허위 합성물(DeepFake·딥페이크) 제작이 스마트폰에서도 가능해지면서 희롱하고 괴롭힐 대상의 얼굴에 음란물을 입힌 성착취물이 SNS 공간에서 독버섯처럼 퍼졌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 10대들이 또래와 교사의 딥페이크를 퍼뜨리는 문제가 심각했다. 8월 시작된 집중 단속으로 검거된 피의자의 80%가 10대였다. 가해자 상당수가 평범한 청소년으로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 충격을 줬다. 다수 동문에게 범행한 서울대 졸업생이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⑨배터리 위험성 드러난 화성 아리셀 화재

2024년에도 대한민국을 슬픔에 빠뜨린 참사는 반복됐다. 6월 24일 경기 화성시의 리튬배터리 제조사 아리셀 공장에서 배터리 폭발과 함께 불이 나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18명이 외국인 근로자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1989년 전남 여수시 럭키화학 폭발 사고(사망자 16명)를 뛰어넘은 '역대 최악'의 화학공장 인재다. "총체적 부실이 원인"이라는 수사 결과가 나오면서 산업현장의 안전망 개선 목소리도 커졌다.


⑩소수 정예로 파리 올림픽 최고 성적... 활·총·칼 위력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48년 만에 소수 정예(144명)로 꾸려진 태극전사들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예상(금 5개)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금 13개)을 내며 국민에게 기쁨을 안겼다. 특히 활, 총, 칼을 앞세워 금메달을 10개나 쓸어 담았다. 양궁은 5개 전 종목을 석권했고, 사격은 3개의 금메달을 명중시켰다. 펜싱은 2차례 금빛을 찔렀다. 다만 체육계의 낡은 관행이 배드민턴 안세영의 폭로로 드러나 거센 후폭풍이 일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