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에만 265억 원이 들어갔다.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유재명 이동욱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일본 유명 배우 릴리 프랭키가 합류하기도 했다.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내부자들’과 ‘남산의 부장들’ 등 화제작들을 연출했던 이다. 제작사는 하이브미디어코프. ‘서울의 봄’(2023)과 ‘내부자들’(2015), ‘덕혜옹주’(2016) 등 히트작을 다수 배출한 회사다. 투자배급사는 국내 영화계 가장 큰손 CJ ENM. 24일 개봉하는 영화 ‘하얼빈’은 대작이라는 수식으로는 부족한, 화려한 외관을 지녔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현빈)의 의거를 이야기 뼈대로 삼는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있었던 거사 이전 안 의사와 주변 인물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영화는 실재와 가공을 섞는다. 안 의사가 독립군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신아산 전투 승리를 이끌었으나 일본군 장교 모리 다쓰오(박훈)를 풀어줬다가 화를 입는 내용, 우덕순(박정민), 최재형(유재명) 등과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 암살을 도모하는 장면 등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어가 능통한 독립군 김상현(조우진), 중국 군벌과 선이 닿아 무기 공급이 가능한 공부인(전여빈)이 거사에 동참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허구다. 안 의사 일행 중 밀정이 암약한다는 설정이 더해지기도 한다. 익숙한 역사에 낯선 내용을 새로 붙여 영화적 재미를 빚어내고자 한다.
화면에서는 제작비 규모가 느껴진다. 라트비아(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장면)와 몽골에서 촬영한 이국적인 풍광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빚어낸 신아산 전투 장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마차가 전철과 부딪혀 대파하는 모습에도 대작의 기운이 어려 있다.
영화는 스펙터클에 집중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긴박함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작심한 듯 움직임이 느리거나 고정돼 있다. 거사를 앞둔 안 의사의 고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의로운 일을 하려는 독립군의 고투에 초점을 맞춘다.
안 의사가 누가 밀정인지를 알아내고 이에 대처하는 대목이 잠시 서스펜스를 형성하나 극 전체를 흔들 정도는 아니다. 카메라는 클로즈업을 최대한 피하고, 화면은 연극 무대처럼 구성돼 있다. 바람에 흩어지는 눈발과 낙엽까지 섬세하게 포착할 정도로 촬영에 공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우민호 감독은 지난 18일 언론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독립군의 활약을 숭고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의문은 따른다. ‘하얼빈’은 허구를 더해 첩보물 요소가 들어갔음에도 자극적인 전개를 애써 피한다. 안 의사와 독립군의 의로운 행보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면 역사를 굳이 가공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얼빈’은 배우들의 호연이 눈길을 끄는 영화다. 특히 현빈의 활약이 눈길을 잡는다. 그는 상황과감정에 쉬 휘둘리지 않는 원칙주의자 안중근의 복잡한 내면을 눈빛으로 전달한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현빈은 “‘하얼빈’ 출연을 여러 번 고사했다”고 밝혔다. “실존 인물 연기가 부담스러운 데다 특히나 안중근 의사의 존재감이나 상징성이 워낙 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감독님이 보내주신 시나리오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현빈은 “저희 영화는 처음부터 ‘시원한 한방’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독립군들이 걸어가셨던 길과 험난한 상황들을 보여주려 했다”며 우 감독의 연출 의도를 대신 전하기도 했다. 그는 “촬영이 끝난 후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게 다른 작품들과는 완전히 달랐다”며 “크랭크업하고 메이킹필름용 소감을 밝힐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