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고금리 ②인구·산업구조 불균형 ③정부의 재정정책 실패. 경제 전문가들이 꼽은 내수 부진의 근본적 원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소비심리는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원·달러 환율까지 1,450원 선을 드나들며 물가 상승은 불가피해 보이고, 이는 경제주체들의 지갑을 닫게 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내수 부진을 적절히 타개하지 못하면 일본이나 남미 국가처럼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수 부진→고용 감소 →소비 위축의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이라도 대출 규제를 풀어 내수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당장 부동산 가격이 조금 오르고 가계 부채도 늘 수 있지만 돈이 흐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대출 규제를 서서히 풀어 내수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를 유지하면 소비와 투자가 줄고, 여기에 내수와 밀접한 건설경기까지 침체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며 "이자 부담 때문에 서민들이 소비할 여력이 없어진 상황에 정치적 불안까지 겹쳐 당분간 내수 침체 문제가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수 부진은 인구 구조적 영향도 있다. 2025년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 20% 초과)를 앞두고 있는 만큼 소비층은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탓에 대출 만기 연장, 저금리 대출 전환 등 소상공인 정부 대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은행권은 23일 폐업에 몰린 소상공인들을 위해 연간 7,000억 원의 이자 부담을 경감하는 등 3년간 2조 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인구 구조 측면에서 (내수 부진을) 단기간 해결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결국 이 시기만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대출을) 유예를 해주는 건데, 문제는 상황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경제 전문가들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선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했던 '건전재정' 기조는 경제를 살리고 난 다음의 얘기라는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폭탄'이 내년에 현실화했을 때 내수가 받쳐주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장기간 불황 국면이 지속되는 ‘L’자형 불황 시나리오가 유력하다는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행도 높은 환율 때문에 금리를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내수 부진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국민 대신 빚을 지는 수밖에 없다. 여야가 협력해서 재정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내수 회복을 위해 재정 정책을 써야 한다"며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가 있지만, 내수가 부양되면 그 이익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정부도 추경 필요성은 공감한다. 다만 내년 예산부터 조기집행을 통해 재정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1분기 추경론'에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내년 예산이 1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며 "취약계층 일자리·복지 지원,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으로 11조6,000억 원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지방자치단체 국고보조사업에 국비를 우선 교부하거나 교부 기간을 단축하는 '신속집행' 방식으로 보조금 재량지출을 상반기 3조 원 늘려 집행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