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압박 아래 대출 문턱을 높여온 은행들이 속속 새해 영업 준비에 시동을 걸고 있다. 실수요 성격이 강한 대출부터 한도를 늘리고, 비대면 창구도 다시 연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현재 적용 중인 가계대출 규제를 새해부터 일부 없애거나 완화할 예정이다. 2억 원으로 제한한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늘리거나 없애고, 모기지신용보험(MCI)과 모기지신용보증(MCG) 취급을 재개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MCI·MCG가 다시 적용되면 그간 공제됐던 소액임차보증금(서울 기준 5,500만 원)을 포함해 대출을 받을 수 있어 그만큼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NH농협은행도 해가 바뀌는 내달 2일 이후 실행분부터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다시 허용하기로 했다. 주택 소유권이 시공사에서 수분양자로 이전되는 분양주택 전세대출도 이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로 불리는 서울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에도 NH농협은행 전세대출이 공급될 전망이다. 이와 별도로 이달 23일부터 주기형(5년) 주담대 우대금리를 0.1%포인트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까지 낮추기로 했다. 신용대출 비대면 판매 중단 조치도 30일부로 해제된다.
다른 주요 시중은행 역시 가계대출 제한을 단계적으로 풀고 있다. 신한은행은 17일부터 생활안정자금 주담대 한도를 2억 원까지 늘렸고, MCI 취급과 대출 모집인을 통한 주담대 접수를 재개했다. 1주택자 전세대출 취급 중단 조치를 풀면서 신규 분양주택 전세자금대출도 다시 판매하기로 했다. 연 소득 안에서만 빌려줬던 신용대출 한도는 내달 2일부터 사라진다. 앞서 하나은행은 12일부터 내년 대출 실행 건에 한해 비대면 주담대·전세대출 판매를 재개한다고 밝혔고, 우리은행도 23일부터 비대면 가계대출 중단 조치를 해제할 예정이다.
전(全) 금융권 가계대출이 8월 한 달 동안 9조7,000억 원 느는 등 급증하자 당국은 은행권에 각자 제출한 연중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준수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은행들이 돈줄을 죄면서 연말까지 대출 한파가 이어졌는데, 내년에는 총량 관리 목표가 새로 설정되는 만큼 문턱을 낮출 여유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탄핵 정국으로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경기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20일 기자들과 만나 “가계대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실수요자에게 자금 공급이 원활하게 되도록 방향을 잡고 있다”며 지금보다는 완화된 방침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