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중부에 짓는 대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확정됐다. 다만 보조금 규모는 4월 약정한 것보다 26% 줄었는데 반도체 사업에서 경쟁력 위기에 빠지고 비상 경영에 돌입한 삼성전자가 투자 규모를 조정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테일러 공장을 2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최선단 파운드리 공정 위주로 운영하면서 현지 고객사 확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2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20일(현지시간)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설치하는 최첨단 반도체 공장 건설에 대한 반대 급부로 최대 47억4,500만 달러(약 6조9,000억 원) 규모의 직접 보조금을 확정했다. 삼성전자는 테일러시에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과 연구개발(R&D) 시설을 둘 예정이다. 근처 오스틴시에 있는 기존 공장도 생산력을 늘려 미 국방부와 협력 사업을 비롯한 항공우주·방위·자동차 분야 반도체 생산을 맡는다.
삼성전자는 4월 미국의 반도체과학법(CHIPs Act)에 따라 미 상무부와 최대 64억 달러(약 9조2,000억 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약정한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했는데 이보다는 16억5,500만 달러(약 2조3,000억 원) 깎였다. 원인은 삼성전자가 테일러시 공장의 투자 규모를 450억 달러에서 370억 달러까지 줄여서다. 공장 완성 후 지속 고용할 고임금 인력 수도4,500명에서 3,500명으로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미국 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최선단 공정에 집중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4월 발표 때는 사업 내용에 2나노급 시스템 반도체 공장 외에 4나노 양산 공정과 첨단 후공정(패키징) 등도 포함됐지만 이번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직전까지 미국 사업을 진두지휘하다 11월 인사로 파운드리사업부장을 맡게 된 한진만 사장은 9일 취임 후 첫 메시지에서 "2㎚ 공정의 빠른 생산량 증대"를 과제로 꺼냈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을 맡은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은 "반도체과학법에 따른 계약은 미국에서 최첨단 반도체 생태계에 대한 투자와 건설을 이어가게 하는 또 다른 이정표"라며 "다가올 인공지능(AI) 시대의 변화하는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미국의 파트너사와 더욱 협력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2025년 1월 20일)을 한 달 앞두고 반도체과학법에 따른 지원금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애초부터 반도체과학법에 따른 보조금 390억 달러를 연내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특히 보조금 지급에 회의적이었던 트럼프의 당선 이후 작업에 속도를 더 냈다.
앞서 SK하이닉스가 19일 인디애나주에 세울 고대역폭메모리(HBM) 후공정 공장에 대한 지원금 4억5,800만 달러를 확보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20일 삼성전자에 대한 지원금 지급을 확정하면서 "미국은 지구상 5대 첨단 반도체 기업(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TSMC·인텔)의 제조 공장을 보유하는 유일한 국가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