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의 뇌관이 연일 한덕수 권한대행을 겨누고 있다. 두 개의 특검법(김건희 특검법, 내란 특검법)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에 달렸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안을 24일까지 공포하라"며 탄핵하겠다고 압박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그랬다간 헌법 위반"이라며 한 권한대행에 힘을 실었다. 이에 한 권한대행은 총리 시절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한 논리를 고수하며 일단 버티고 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숙고가 길어질수록 여야는 더 거칠게 맞붙고 정국은 한층 요동칠 전망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22일 두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 결정 기한이 앞당겨질 수 있냐는 본보 질의에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충분히 여러 의견을 듣고 결정한다는 방침 외엔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앞서 정부는 특검법 관련 결정 '데드라인'을 법정 재의요구 시한(내년 1월 1일) 하루 전인 이달 31일로 정했다. 그러나 이날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24일까지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와 특검법 공포를 하지 않으면 즉시 책임(탄핵)을 묻겠다"고 압박하면서 상황이 급박해졌다.
여당도 정부를 압박하긴 마찬가지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특검법들에 대해 "거부권을 안 쓰는 것이 헌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독점하는 문제, 내란 특검법은 수사 중복 문제를 거론하며 "야당의 특검 폭거"라고 규정했다. 권 원내대표는 "(야당이) 거부권을 비판하려면 법안의 위헌 요소부터 제거하는 게 우선"이라며 거부권 행사 건의를 예고했다.
이날 여당이 특검법 반대 사유로 제시한 '위헌' 논리는 사실 한 권한대행이 올해 1월, 10월, 11월 세 차례에 걸쳐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를 의결하며 강조한 내용들이다. 한 권한대행은 총리 시절 ①특검 후보자 추천권을 야당이 독점해 '헌법상 권력분립 위반' ②이미 수사기관 수사 중으로 '특검의 보충성·예외성 원칙 위반' ③수사기간과 수사인력이 과도 ④특검의 언론브리핑은 '피의사실 공표' 등을 문제 삼아왔다. 이날 권 원내대표는 이 중 ①, ② 논리를 차용했다.
직전 폐기된 김건희 특검법(3차·11월 재의요구)은 여당 이탈표를 노려 특검을 야당이 아닌 제3자가 추천하도록 하고 수사범위를 일부 축소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로 이송된 '4차 김 여사 특검법'은 이런 내용마저도 모두 원상복귀됐다. 정부 입장에선 이번 여사 특검법을 '위헌성 최대'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내란 특검법은 여사 특검법과 달리 특검 후보자를 제3자(법원행정처장·대한변협회장·한국법학교수회장)가 추천하도록 했다. 하지만 ①정부 여당이 문제 삼아온 '임명 간주 조항'(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지 않으면 후보자 중 연장자를 자동 임명)이 살아있고 ②이미 공조수사본부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③수사 기간은 동일하고 수사인력 규모(여사 특검 최대 155명·내란 특검 최대 205명)는 더 크다. ④특검 언론브리핑 조문도 동일하게 포함돼 있다. 정부가 여사 특검법과 동일하게 '위헌'을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정부 말대로 '헌법과 법률에 따른다'는 기준만 고려한다면 한 권한대행이 당장 거부권을 행사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정치적 상황이 간단치 않다. 야당이 거부권 행사에 반발해 '한덕수 탄핵'을 추진하면 정국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든다. 야당이 앞세운 '24일 데드라인'에 정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유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가장 큰 책임을 지게 될 정부로서는 이번 주 초 출범할 '여야정 협의체'에서 정치적 타협 방안이 도출되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의제 선정부터 여야 갈등이 첨예한 만큼 뚜렷한 진전을 기대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