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에 44년 전 공포 떠올라"… 농인들 '탄핵 집회'로 이끌었다

입력
2024.12.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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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공포에 7일간 문의 1000건 쇄도
집회 현장 '수어 시야석' 부족하지만…
"잘못된 계엄 바로잡는 데 힘 보탤  것"

이차주(35)씨는 21일 경복궁 동십자각을 찾았다. '윤석열 즉각 파면·처벌 사회대개혁 범국민 대행진' 집회 현장이었다. 청각장애인인 이씨는 수화 언어를 일상어로 쓰는 농인이다. 그녀는 집회 무대 위 수어통역사 손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으며 밴드 '아시아체어샷' 등의 노랫말(사랑이 모여라)을 수어로 내내 따라불렀다.

'12·3 불법계엄 사태'를 규탄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30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씨와 같은 농인들도 열기를 보탰다. 강원 춘천에 사는 이씨는 전날 밤 퇴근 후 응원봉과 방한용품을 챙겨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잠을 설쳐가며 상경해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건 국민의 응집된 뜻을 전달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난데없는 계엄 선포 이후 춘천에서 열린 두 차례 집회에 참여했던 그는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됐던 이달 14일부터는 여의도· 광화문 집회에 꾸준히 나오고 있다.

농인에게 극도의 불안 '계엄의 밤'

비상계엄 선포 당일 밤 농인들은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다. 전국 곳곳의 수어통역센터에도 관련 문의가 쇄도했다. 경기 양평 수어통역센터에서 청각장애인 통역사로 일하는 농인 조승규(49)씨에 따르면 "전쟁났느냐"고 묻거나 (뉴스에 나온 군 부대를 보고) "북한군과 싸우는 거냐"며 불안해 하는 연락이 속출했다고 한다.

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가 운영하는 수어통역센터 중앙지원본부가 전국 206곳 중 173개 수어통역센터에 '계엄 관련 문의' 건수를 확인한 결과 4일부터 11일까지 7일간 총 1,092건에 달했다. 윤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계엄령 선포 뒤 국회가 해제를 의결하기까지)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느냐'고 항변했지만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농인들은 수일간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다.

농인들이 이처럼 공포를 느낀 건 44년 전 신군부가 발동한 계엄 사태로 농인이 희생 당한 역사를 생생히 전해들어서이기도 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가 들이닥칠 때 소리를 듣지 못한 채 계엄군에게 장애인증을 제시했으나 무차별 폭행을 당해 사망한 농인 김경철(당시 27세)씨 사건이다.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올해 3월 전북대 학생을 첫 희생자로 공식 확인하기 전까지 김씨는 5·18 첫 희생자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차주씨는 "학살이 '저와 제 친구의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계엄 당일) 새벽 내내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불편 감수하고 계속 집회"

사실 농인들의 집회 참여엔 여러 어려운 점이 많다. 대규모 집회엔 수어통역사가 배치되고 전광판으로도 수어통역 화면이 제공되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 제대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규모 집회는 수어통역사가 아예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도 농인들은 '잘못(불법계엄)을 바로잡는 과정에 계속 동참할 것'이란 의지를 드러냈다. 특수교사인 농인 배성규(44)씨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침묵하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들과 다르지 않을 듯해 집회 현장을 찾게 된다"고 했다.




문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