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차 빼라, 차 빼라!”
“탄핵 반대자는 농민이 키운 쌀 먹지 마!”
‘12·3 불법 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체포·파면을 촉구하며 상경 투쟁을 시도하다 서울 진입 문턱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농민 트랙터 행렬에 수많은 시민들이 속속 가세하고 있다. 대낮에 시작된 농민과 경찰 간 대치는 날짜를 넘겨 밤새 이어질 전망이다.
22일 경찰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에 따르면 전농 소속 농민들은 트랙터 30여 대와 화물차 50여 대를 몰고 전날 정오쯤 과천대로를 통해 서울로 들어가려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에 저지당해 12시간 넘게 발이 묶였다.
경찰은 양방향 도로에 차벽을 세워 트랙터 행렬을 막았고, 농민들은 서울 광화문 집회 현장과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가겠다며 맞섰다. 가까스로 서울에 진입한 트랙터 3, 4대도 동작대교에서 경찰에 봉쇄됐다.
전농과 경찰 간 대치 소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전날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집회가 마무리된 후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남태령 고개로 속속 모여들었다.
낮 시간대에는 농민들과 일부 시민들만 있었지만 12시간이 훌쩍 지난 22일 새벽 0시 현재 시민 수천 명이 집결해 농민들과 연대하고 있다. 주변 도로가 전면 통제돼 버스가 다니지 않는 데다 지하철 운행마저 끊겼는데도 시민들은 첫차가 다닐 때까지 농민들과 함께 밤샘 농성을 하겠다며 자리를 지켰다.
시민들은 트랙터 구조물에 마련된 자유 발언대에 잇따라 올라 “윤석열 구속” “윤석열 체포” “윤석열 파면” 구호를 힘차게 외치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여의도 국회 앞과 광화문 광장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였던 아이돌 응원봉도 주변에 건물 하나 없는 어두운 남태령 고개를 밝게 비췄다. 시민 발언이 끝날 때마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차 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부의 딸이라는 20대 여성은 “우리가 가장 소중한 빛인 응원봉을 들고 나왔듯이 농민들도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트랙터를 이끌고 나온 것”이라며 “탄핵을 반대하고 트랙터를 막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뜨끈한 쌀밥, 달달한 막걸리, 제철 농가 먹거리를 먹지 말라”고 외쳐 큰 환호를 받았다.
오랜 시간 차가운 도로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끼니도 거른 농민들을 위해 현장에는 누군가가 선결재한 분식차가 차려졌고, 시민들이 닭죽을 가져와 나눠주기도 했다. 따뜻한 음료, 김밥, 토스트, 피자 등 각종 먹을거리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이재정·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현장으로 달려와 전농과 경찰 간 충돌을 막기 위해 중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영남과 호남에서 출발한 전농 회원들은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농법 4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연 뒤 경기 수원시에 도착했다. 21일에는 수원에서 출발해 대통령 관저와 광화문 촛불집회 장소로 행진할 계획이었다.
경찰은 전농이 낸 행진 신고에 ‘공공의 이익을 훼손할 정도로 극심한 교통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제한 통고’를 했다. 하지만 전농은 트랙터 행진 규모가 크지 않고 1개 차로로 진행되는 만큼 경찰의 결정은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이라고 반발했다.
강순중 전농 정책위원장은 “지난 닷새간 트랙터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올라왔는데 경찰이 집회·결사의 자유를 막고 있다”며 “길을 열어줄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