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문학상’ 위수정 “손바닥에 쥐여준 빛, 꺼지지 않도록 하겠다”

입력
2024.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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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회 한국일보문학상 시상식

편집자주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7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7년 전 신춘문예 당선 전화를 받았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날과 오늘의 제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상 소식을 듣고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런 상을 받을 만큼 좋은 글을 썼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서였습니다.”

제5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우리에게 없는 밤’을 쓴 위수정 작가는 20일 서울 중구 성프란치스코회교육회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런 소감을 전했다. 10개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 ‘우리에게 없는 밤’은 소비 사회에서 세대와 계급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자아를 내밀하게 파헤친다. 심사위원단은 “당대의 윤리와 도덕에서 벗어난 위악적인 태도로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2017년 등단해 두 번째 소설집으로 상을 받은 위 작가는 이날 "유독 어둡고 힘들었던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은 제 손바닥에 빛을 쥐여준 것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얼마나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그럼에도 사랑해야 할 것들을 사랑하고, 읽어야 할 것들을 읽고, 써야 할 것들을 쓰는, 작가로서의 일상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빛이 꺼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다루겠다"며 "저를 조금씩 일으켜 세워준 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당연하게 살아가는 가족들과 동료들, 선생님들의 모습이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심사를 맡았던 황종연 문학평론가는 이날 시상식에서 “한국일보문학상은 수상자 명단만 봐도 한국문학이 창출한 약동하는 흐름을 읽을 수 있다”며 “올해 수상자인 위 작가도 그 흐름에 크게 기여해왔고 또 기여할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또 “문학적인 것이란 해결이라기보다 질문이고 신념이라기보다 의심이라고 믿는 나 같은 독자에게 ‘우리에게 없는 밤’은 고마운 선물”이라며 “소비와 향락의 원더랜드를 앞에 두고 위 작가가 관찰하는 욕망의 아라베스크가 앞으로 더욱 정교하고 장려한 모습으로 출현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축사는 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였던 소설가 최은미가 맡았다. 최 작가는 "'우리에게 없는 밤'에 실린 소설이 쓰이던 시기에 위 작가와 가장 많이 나눈 얘기는 소설이 너무 안 써진다는 것과 사는 낙이 너무 없다는 것"이라며 "위 작가와 통화를 마치고 나면 소설이 너무 안 써지니까, 사는 낙이 특별히 없으니까, 계속 소설을 쓰고 있게 될 거라는 낙관이 올라오곤 했다. 낙관과 믿음을 공유해준 우정의 시간들에 감사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축하를 건넸다.

이성철 한국일보 사장은 위 작가에게 상금 2,000만 원과 상패를 전달했다. 시상식에는 강영숙 김홍 소설가 서효인 시인 소유정 조형래 문학평론가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 이근혜 주간 김필균 부장 문학동네 김소영 대표 김내리 방원경 편집자 등이 참석했다. 한국일보사가 제정하고 GS가 후원하는 한국일보문학상은 1968년 시작되어 올해로 57회를 맞았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출판된 소설·소설집 중에서 수상작을 뽑았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