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건진법사' 전성배(64)씨가 다시 호명됐다.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무속인은 당시 대선을 앞두고 역술인 '천공'과 함께 윤 대통령 부부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받았다. 윤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각종 이권·인사에 개입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나 당선 후 대통령 부부에게 내쳐졌다고 알려지면서 세간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렇게 잊힌 전씨가 최근 2년여 만에 다시 소환됐다. 윤 대통령 내외의 '선거 공천 개입 의혹' 관련 핵심 인물인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지난달 건진법사를 언급하면서부터다. 또 검찰은 지역 정치인으로부터 1억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17일 전씨를 체포했다. 1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기각됐으나 검찰은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 중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지금까지도 유튜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천공과 달리, 2년여 동안 사실상 잊히다가 검찰 수사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전씨의 정체를 들여다봤다.
전씨는 '일광조계종' 소속 승려로 충북 충주 일광사를 본산으로 두고 혜우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혜우스님이 창종한 일광조계종은 대한불교조계종과는 무관한 종파로, 불교와는 거리가 먼 무속 관련 종파로 알려져 있다. 일광조계종은 지난 2018년 9월 충주 중앙탑공원에서 '수륙대재 및 국태민안 등불축제'를 개최하며 가죽을 벗긴 소 사체를 제물로 올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전씨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드러난 건 2021년 10월쯤부터다.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는 이 시기 "전씨가 윤 후보자, 김 여사 부부와 매우 가깝게 지내고 선거 캠프에서 활동 중"이라는 제보를 받고 충주 일광사로 향했다. 그곳에서 혜우스님은 "전씨는 신내림을 받고 나한테서 자랐다"면서 "전씨에게 윤석열을 지키라 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전씨는 당시 김 여사, 대선 캠프 등에 대해서 "모른다"고 함구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씨가 윤석열 대선 캠프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추가로 발견됐다. 2022년 1월 세계일보는 전씨가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본부 하부조직인 네트워크본부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인재 영입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전씨는 윤 후보의 검찰총장 시절부터 대권 도전을 결심하도록 도왔으며, 자신을 과거 왕에게 자문하는 직책인 '국사'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될 사람이라고 지인에게 소개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는 선대본부에 합류하기 전 서울 역삼동 지하철 9호선 언주역 인근 한 단독주택 2층에 법당을 차리고 신점, 누름굿(신내림을 막는 굿) 등 무속활동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파장은 컸다. 보도가 나오자 윤 대통령은 "우리 당 관계자한테 그분 소개받아서 인사한 적은 있는데, 스님으로 전 알고 있고 법사라고 들었다"며 수습했다. 국민의힘도 전씨에 대해 "무속인이 아니며 대한불교종정협의회 기획실장"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과거 TV토론에서 손에 '왕(王) 자'를 쓰고 출연한 데 대한 논란 및 천공과의 관계 등이 재조명되면서 윤 대통령을 향한 '무속 꼬리표'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일보 측은 같은 날 추가 보도로 '전씨는 무속인이 아니다'라는 국민의힘 주장도 반박했다. 매체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전씨는 선거 캠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월 1일 전씨는 윤 후보의 팔을 붙잡은 채 본부 내 팀도 차례로 호명하여 사진 촬영을 재촉하는 등 친근감을 표시하며 선대위 관계자들을 지휘했다. 직원들은 물론 김형준 네트워크본부 수석부위원장에게도 거리낌없이 대했다. 결국 첫 보도 후 이튿날, 선대본 산하 '네트워크본부'는 해체됐다.
전씨 관련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씨의 처남 김모(54)씨와 전씨의 딸(38)도 선대위 업무에 관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윤 대통령이 TV토론에 나올 때 손바닥에 적은 '왕(王) 자'도 전씨가 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세계일보의 보도가 나오기 일주일 전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윤석열 캠프에 J도사가 있는데 손바닥의 王 자도 이 도사 작품"이라며 "J도사는 가끔 면접도 보는데, 어떤 면접에서 '당신은 의리가 있는 관상이니까 윤 후보를 도와도 되겠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조 교수는 "J도사와 전씨가 동일인물"이라고 한 언론에 밝혔다.
전씨와 김 여사가 친분 관계로 판단된다는 내용도 추가로 확인됐다. 김의겸 당시 열린민주당 의원은 전씨와 스승 혜우스님이 2015년 김 여사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 주관 행사에 참석한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며 "전씨가 최소한 7년 전부터 김건희씨와 잘 아는 사이였음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또 전씨의 코바나컨텐츠 고문 직함 명함이 공개되기도 했다. 전씨는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췄다.
한동안 잠잠하던 전씨는 윤 대통령 당선 이후인 같은 해 8월 다시금 언론에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이 전모(62)씨로부터 민원을 청탁받은 것으로 알려진 고위공무원에 대해 진상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또 전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인연을 과시하며 이권에 개입하려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대기업들에 "윤 대통령 부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전씨가 윤 대통령 내외로부터 사실상 절연당했다고 알려지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어졌다.
2024년 11월 전씨는 2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에 엮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사태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는 "김영선 전 의원이 '공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명태균 덕분이 아니라 건진법사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며 분노했다. 김 전 의원의 공천에 전씨가 영향력을 끼쳤다는 주장이 명씨의 입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이달 17일, 전씨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경북 영천시장에 출마하려는 복수의 후보자에게서 1억 원이 넘는 금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검찰에 체포됐다. 검찰은 배우 배용준씨의 투자 참여 사실을 앞세워 '욘사마 코인'으로 불렸던 스캠 코인(사기 가상화폐)인 '퀸비 코인'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전씨의 혐의점을 포착했다고 한다.
전씨는 윤 대통령 최측근 의원으로 분류되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을 내세워 공천 장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원은 그러나 '전씨가 자신의 이름을 팔고 다녔던 것 같다'며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후보자가 당선에 실패하면 돈을 돌려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법은 19일 영장실질심사를 연 뒤 "피의자가 금원(금전)을 받은 날짜, 금액, 방법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며 전씨에 대한 검찰의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한 뒤 보강 수사를 거쳐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