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대상지에 이어 이주 대책까지 발표하면서 대상지 주민들의 표정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분당에선 아파트 호가가 수억 원씩 뛰며 시장이 크게 들썩이지만, 일산은 9,000가구 재건축이라는 호재에도 잠잠하다. 분당에 비해 사업성이 떨어지고 이주 대안도 충분치 않아 당분간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17일 찾은 경기 고양시 일산 백송·후곡·강현마을 아파트 곳곳엔 '선도지구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들 3개 구역에선 총 8,912가구가 정비될 예정이다. 1기 신도시 5곳(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중 1만948가구가 정비에 들어가는 분당 다음으로 큰 규모다. 정부는 2027년 첫 삽을 떠 2030년에는 입주를 시작하겠다는 방침이다.
백석·마두역 일대 중개업체 관계자들은 대규모 호재에도 몇 주째 고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백송마을 앞 A 공인중개소 대표는 "물건 내놨던 집주인들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려고 거두는 분위기는 맞다"면서도 "반대로 매입 의사가 있어야 시장이 움직이는 건데 2주 동안 이렇다 할 만한 문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후곡마을 인근 공인중개사도 "호가를 올리려고는 하는데 매입 문의가 많지 않아 분당처럼 확 올려보시라고 권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곳 주민들이 분당만큼 웃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업성 때문이다. 재건축 허용 용적률이 최고 300%로 분당(320%)이나 평촌·산본(330%), 중동(350%)보다 낮고, 신축 일반 분양가는 84㎡ 기준 10억 원대로 예상돼 분당보다 수익이 2배까지 차이가 난다. 여기에 공사비가 지속적로 올라 분담금이 2억~3억 원이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백송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재건축 대상되기가 쉽지 않은데 일단 선정이 됐으니 여러 고민을 해보고 있다"며 "같은 평수를 택해도 분담금이 3억 원도 될 수 있단 이야기가 있는 게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기반 시설이 부족해 2027년 착공이 가능한지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양시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소각장이 인근 백석동에 있는데, 수년 전부터 넘치는 쓰레기를 감당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백석역 인근 B 공인중개사는 "지금도 시 내부에선 대책이 없어 이웃 파주시가 광역소각장을 지어주길 기대하는 실정"이라며 "인근 장항동에 착공한 CJ 아레나(K팝 전문 공연장)의 경우는 전력공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공사가 멈췄는데, 재건축을 위한 전기 증설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후곡마을 주민도 "2027년 철거를 한다면 내후년엔 이사가 모두 완료돼야 하는데 가능하긴 하겠냐"며 고개를 저었다.
정부가 19일 발표한 선도 지구 이주대책에 일산 관련 대안이 부실한 것도 문제다. 정부는 공사 기간 주민들이 이주할 주택 물량이 주변에 충분한 일산에는 별다른 주택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삼송·향동지구가 비교적 최근 개발된 데다 3기 신도시인 창릉도 2029년 준공 예정인 점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B 중개사는 "1990년 초 신도시가 되고 세대가 몇 번 교체된 분당보다 일산은 어르신 비중이 높다"며 "주변 신도시 신축으로 이사를 가 있기에는 비용도 부담이고 주택연금을 타고 있는데 어쩌냐는 분들도 더러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