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 투자자(FI)인 어피니티컨소시엄(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IMM PE·베어링 PE·싱가포르투자청)이 벌인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 국제분쟁 2차전에서 "제3의 기관을 통해 주식가치를 재산정하라"는 판정이 나왔다. 1차와 달리 2차 중재부가 투자자들의 일부 요구를 받아주면서 신 회장은 외부 자문기관 등을 통해 풋옵션 가격을 재산정하고 이들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를 매입해야 한다.
19일 교보생명 등에 따르면,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는 최근 "신 회장은 어피니티컨소시엄의 풋옵션 주식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정할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 회장은 중재위원회 결정에 따라 즉시 제3의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하고 풋옵션 가격을 산정해 투자자들의 주식을 되사거나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하루에 20만 달러(약 2억 9,000만 원)에 달하는 페널티도 부과된다.
악연의 시작은 6년 전인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피니티는 2012년 9월 대우인터내셔날이 보유하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1주당 24만5,000원에 사들였다. 그러면서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을 경우 행사할 수 있는 풋옵션을 신 회장과 계약했다.
그러던 2018년 10월 어피니티는 1주당 40만9,912원에 풋옵션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안진회계법인에 의뢰해 산출한 가격으로 차익 8,000억 원을 남기는 셈법이다. 신 회장은 풋옵션 행사 가격이 20만 원대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아울러 안진회계법인이 어피니티 입맛에 맞춰 풋옵션 행사 가격을 산정, 공인회계사법을 위반했다고 역공했다.
풋옵션 행사 가격 차이가 크자 어피니티는 2019년 3월 ICC에 국제 중재를 신청하면서 신 회장과 풋옵션 분쟁은 격화됐다. 2년 6개월여의 다툼 끝에 ICC 1차 중재부는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ICC는 2021년 9월 "신 회장은 어피니티가 제출한 40만9,000원이라는 가격에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시에도 풋옵션 자체가 무효라는 신 회장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ICC는 상호 합의에 따라 재산정한 가격을 토대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후 신 회장이 어피니티와의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서 어피니티는 ICC에 2차 판정을 요청, 결국 판결이 다시 뒤바뀌었다. ICC의 판정은 국내 법원의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지만 집행력을 가지려면 국내 법원의 승인과 집행 결정이 필요하다.
교보생명은 경영권 및 지배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교보생명의 시장가치가 한 주당 20만 원을 넘지 못하는 만큼, 제3기관이 공정시장가치를 산정하더라도 어피니티의 초기 투자가격(24만5,000원)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8월 교보생명이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의 일환으로 자사주 2%를 매입할 당시 주당 가격은 19만8,000원이었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이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해 급한 불을 끈 뒤 지주사 전환이나 IPO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분쟁 과정에서 일어난 주주 및 기업 가치 훼손을 정상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