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시 이 대표가 '차기 대통령'에 오를 게 유력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이 대표가 그동안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 온 만큼, 한일 관계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19일에도 윤 대통령 탄핵 정국과 내란 사태 파문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 상황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한국 수사기관과 야당이 윤 대통령을 향한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요미우리는 윤 대통령이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를 비롯한 수사 기관의 조사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현직 대통령이 체포된 사례가 없지만, 수사기관이 상황을 지켜보며 수사에 속도를 낼 것 같다"고 내바봤다. 아사히는 "한국 야당이 윤 대통령 탄핵 요구 선봉에 서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의 입지 약화, 그에 따른 한국 권력 구도 변화에도 주목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 대표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일본 언론 보도가 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으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며 "경기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때 보여준 정책 실행력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아사히는 이 대표의 인생·정치 스토리도 자세히 소개했다. 신문은 "경남 출신으로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공장에서 일하며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 자격을 취득했고,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했다"고 전했다.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벌써 '모시이(李)', '모시이재명'이라는 표현이 확산하고 있다. 모시는 '혹시'를 뜻하는 일본어로 이 대표가 한국의 차기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대선(11월 5일) 실시 전만 해도 일본에서는 미 공화당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재선 리스크를 나타내는 '모시토라'(혹시 트럼프)라는 신조어가 많이 사용됐다. 트럼프 당선자의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었던 만큼, 이 대표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경우 한일 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의미도 담겼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산케이는 "이 대표는 과거 일본을 '적성 국가'(적으로 여기는 나라)로 표현했다. 그의 부상은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도 "이 대표는 대일 관계를 중시하는 윤 대통령을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는 대일 강경파"라며 "개선 흐름을 보이는 한일 관계와 한미일 3국 협력에 그늘이 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도 이런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지난 8일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일 관계와 관련해 "경제와 문화 교류를 역사·영토 문제와 나누어 다뤄야 한다. 서로 대등하게 존중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