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친일파 이해승(1890~1958) 후손을 상대로 한 정부의 토지 환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의 허점으로 이미 환수 대상이 아니라는 확정 판결을 받은 이상, 개정법 조항을 확대 해석해 소급 적용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국가가 이해승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19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개정 친일재산귀속법이 적용됨을 전제로 한 국가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의 5대손인 이해승은 일제로부터 후작작위와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은 대표적 친일반민족행위자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이 회장이 상속받은 재산 중 땅 192필지를 친일재산으로 보고 국가에 귀속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회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친일재산귀속법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를 귀속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해승에게는 그런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이 회장 주장을 받아들였고, 2010년 대법원에서 국가 패소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법의 허점으로 친일재산 환수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쇄도하자, 국회는 2011년 문제 조항에서 '한일합병 공으로' 부분을 삭제했다. 기존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이에 대해선 개정법을 소급 적용할 수 있지만, 판결로 법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되면 그렇지 않는다는 부칙도 달았다.
국가는 개정법을 근거로 이 회장 소유 땅 일부에 대한 민사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이 회장은 그러자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재조사도 없이 국가가 민사소송으로 땅을 가져가려는 것은 부당하다"며 "해당 토지들은 앞선 확정판결로 개정법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된다"고 맞섰다.
재판 과정에서 쟁점은 부칙 단서에 따라 개정법이 적용되지 않는 대상이 △확정판결로 취소된 귀속결정의 대상재산인지 △귀속결정 자체인지로 좁혀졌다. 1심은 '대상재산'에 적용이 제외되는 것으로 해석해 국가 패소 판결했다. 2심에선 과거 판결 대상이 아니었던 1필지에 대해서만 국가 청구를 인용했다.
대법관 13명 중 8명이 이날 항소심 결론을 수긍하면서 원심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입법자는 개정법 시행을 계기로 그 재산을 사후적으로 다시 국가에 귀속시키는 사태는 방지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 주장은 헌법의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짚었다.
다만 김상환 노태악 이흥구 오경미 박영재 등 대법관 5명은 "이 사건 부칙조항 단서의 적용대상은 문언 그대로 '국가귀속결정' 자체라서, 확정판결로 귀속결정이 취소됐더라도 국가가 친일재산의 소유권 반환 등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허용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