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빠르게 끝내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내년 1월 20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종전 협상 주도권을 쥐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샅바 싸움'도 치열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러시아의 담판으로 자국에 불리한 협상 조건이 마련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유럽의 강력한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 러시아 또한 자국 입장대로 종전 협상 틀을 짜기 위해 미국을 상대로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중단하라'는 압박과 '러시아와 협력하자'는 회유 메시지를 동시에 발신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의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 관저에서 뤼터 사무총장 및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과 회동했다. 19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만남이었다.
뤼터 사무총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문 목적을 "평화 회담(종전 협상) 개시를 결정할 때 우크라이나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도록 무기 제공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받는 것"으로 정의했다. 러시아에 영토 20%가량을 빼앗긴 데다, 전황이 긍정적이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토 가입 등 안전 보장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협상에 나설지 모른다는 우크라이나의 불안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종전 협상을 주도할 특사로 지명한 키스 켈로그가 다음 달 초 우크라이나로 파견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등 '협상 시계'는 이미 움직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17일 프랑스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 "누구에게도 우크라이나 없이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상할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의 '단일대오'도 요청했다. 그는 18일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보호할지, 우리 국민과 군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지에 대해 유럽이 분열되지 않고 공동 입장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EU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종전 후 상황 관리를 위해 유럽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하자'는 트럼프 당선자 구상에 대해선 "유럽 지도자들과 세부 사항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는 '선(先) 나토 가입 일정 확보, 후(後) 유럽 군대 파견 논의'라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6월 제시한 조건하에서만 종전 협상 개시 가능'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편을 들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18일 발다이 토론클럽 주최 행사에서 "미국의 지정학적 게임은 심하면 (핵)재앙까지, 매우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지난달 개정된 핵 교리의 현실 적용 가능성을 경고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개정 교리는 핵무기 사용 대상·범위를 넓히는 게 골자다. 푸틴 대통령이 내건 협상 조건은 △러시아가 점령한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 등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철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 △서방의 제재 해제 등이다.
럅코프 차관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선을 그으면서도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목표로 하는 모든 계획을 고려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한 달 후 들어설 트럼프 2기 행정부를 향한 보낸 유화적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