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무력화하려는 여당의 자가당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면서도, 헌법재판관 임명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막아서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6인 체제의 불완전성을 주장하며 헌법재판소 흔들기도 시작됐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지연 시도에 여당이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추고 나서면서 "보수가 법치도 원칙도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19일 국민의힘에선 한덕수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를 두고 정반대의 주장이 터져 나왔다.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한 권한대행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의 당연한 책무"라며 양곡법 등 6개 쟁점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권한을 이어 받은 만큼, 대통령에 준하는 적극적 권한을 사용하라는 촉구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임명권 행사에 대해선 절대 불가론을 외치고 있다. "대통령은 현재 궐위 상태라고 볼수 없다"며 한 권한대행의 임명권 행사가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논리를 폈다. 거부권 때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위를 인정해놓고, 헌법재판관 임명권 행사 때는 권한대행 지위로 볼 수 없다는 이중적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국회 몫 추천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거부권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형식적인 권한 행사인데도, 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건 논리적 모순이란 지적이다.
비판이 나오자, 권 권한대행은 "탄핵소추인인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추천하는 행위는 마치 검사가 자신이 기소한 사건에 대해 판사를 임명하는 것과 같다"며 "즉 소추와 재판의 분리라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했지만, 논점을 흐리는 주장이란 지적이다. 앞서 권 권한대행의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물론 여당이 추천한 조한창 헌법재판관 후보자까지 나서 "(8년 전에도) 권한대행이 임명했다", "권한대행이 임명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세게 반박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6인 헌재 체제의 불법 논란'을 새롭게 들고 나왔다. 당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회 선출 몫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관여한 재판관 6명만으로 재판 심리가 진행된다면 적법절차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졸속 진행돼선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국민들이 수긍할 수 없게 된다"고 적었다.
헌재가 27일 탄핵 심판 첫 변론기일을 예정한 상황에서, 시작부터 '정통성'에 흠집을 내려는 노림수다. 그러나 이 역시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전혀 상반된 주장이다. 당시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을 맡았던 권 권한대행은 8인 헌재 체제와 관련해 "8인 재판관이 내린 결정이 무수하다. 8인 재판관으로 이뤄진 헌법 재판이 위헌이 아니라는 헌재 결정이 있다"고도 강조한 바 있다.
여당의 모순된 행보는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노골적인 보조 맞추기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송달 자체를 수용하지 않는 식으로 버티기에 돌입했다.
당내에선 비판이 커지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이 탄핵의 강을 피하려다 계엄의 바다에 빠졌다고 한다. 당내 대통령 옹호 분위기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며 "친윤당, 계엄옹호당으로 찍히면 집권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보수의 절대 수호 가치인 법치주의를 허물면서 정당 존립 근거를 상실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중립 성향의 한 중진 의원도 "우리 당이 인기는 없지만, 법치주의와 논리적 일관성 하나로 유지돼 온 정당 아니냐. 이제는 법치도 원칙도 훼손하는 자기부정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혀를 찼다. 한 초선 의원은 "과거엔 미련할 정도로 법치, 법리만 따졌는데 지금은 막무가내로 우겨 말까지 엉키는 단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