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필라테스를 한다. 식사할 때 첫 입은 식이섬유와 단백질부터. 탄수화물은 맨 마지막이다. '혈당 스파이크'를 막기 위해서다. 각종 영양제를 입안 가득 넣는다. '아, 오늘도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겼구나' 하루를 마무리하며 뿌듯해할 텐가. 그래 봤자다. 노동자인 우리가 노동 바깥에서 찾을 수 있는 건강은 "반쪽짜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방의학을 전공하고 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해온 임준 인하대 의과대 교수의 일갈이다.
임 교수는 최근 펴낸 '오늘도 무사히'에서 노동자 개인에게 건강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직격한다. 술·담배에 의존하는 나쁜 생활 습관이나 감정노동자를 향한 소비자 갑질이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이 그런 위험을 기획하고 생산한 회사와 정부의 책임은 가려진다는 것. 이때 노동자에게 건강은 일터 바깥에서 알아서 찾아야 할 무엇이 된다. "노동이 건강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의 노동이 노예의 노동과 무엇이 다른가?" 책은 묻는다.
산재는 제조업이나 건설업 등에서의 사고성 재해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책은 강조한다. "특정 산재만 일과 관련된다고 바라보는 시대는 끝났다. 거의 모든 질병이 일과 관련돼 있거나 관련될 수 있다."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가량을 일터에서 보내는 우리가 불면증과 우울증, 고혈압과 당뇨병, 어깨와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면, 이를 일과 무관하다고 단정하는 게 더 비상식적이라는 얘기다. 책은 "노동자의 건강 개념은 전통적 산재나 직업병에 머물지 않고 전체 건강 개념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산재는 노동자 일부인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산업안전보건 체계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지 못한다. 2023년 한 해에만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근로자 10만 명당 치명적인 산업재해 수는 4.6명으로 벨기에(0.1명)의 46배에 이른다. 그나마 죽음은 집계라도 되지만 일하다 다치거나 병든 상당수 노동자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일상 노동에서 오랫동안 위험 요인에 노출돼 나타나는 만성질환의 증가도 불가피해졌다. 책은 만성질환 관리 역시 산업안전보건 체계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짚는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건강은 비용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최소한의 인적 투자라는 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주위의 모든 노동자는 차별 없이 건강해질 권리가 있고, 국가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책이 말하고자 한 메시지의 전부다. 부제는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