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의사 역할을 꼭 하고 싶었어요. (수술 장면 촬영도) 대역 없이 제가 직접 했어요.”
배우 박은빈이 내년 디즈니플러스의 의학드라마 '하이퍼나이프'에서 처음으로 의사에 도전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무인도의 디바’(2023) 등 출연 작품마다 호평을 받았던 그의 첫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데뷔작이다. 박은빈은 드라마에서 30년 차 베테랑 배우 설경구와 의사 사제지간으로 호흡을 맞춘다. 연기력이 탄탄한 두 배우의 출연에 방송가에서는 내년 기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 2월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 이후 방송가 흥행 공식이었던 의학드라마는 자취를 감췄다.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시즌1 2020년, 시즌2 2021년)에서 파생된 드라마(스핀오프)인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은 tvN에서 지난 5월 공개 예정이었다. 올해 기대작 중 하나였지만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의사들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편성이 취소됐다.
업계에서는 의사들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는 '슬의생' 후속이 의료계의 집단 이기주의에 공분했던 사회 분위기와 괴리가 크다는 우려가 나왔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은 내년 편성 여부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달부터 이달 12일까지 12부작으로 방영된 KBS의 의학드라마 '페이스미'도 2.5%의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배우 이민기와 이민형을 앞세워 성형외과 의사가 범죄 피해자의 재건 성형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의학 범죄 드라마였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의정 갈등 지속에도 의학드라마들이 도전장을 내민다. 디즈니플러스는 내년 3월 박은빈·설경구 주연의 ‘하이퍼나이프’를, 넷플릭스는 주지훈이 천재 의사로 나오는 ‘중증외상센터’를 공개한다. 두 작품 모두 각 OTT가 한국에서 처음 만든 의학드라마다. 의학드라마는 세계적으로도 호응을 받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구암 허준’(2013)부터 ‘낭만닥터 김사부’(시즌 1 2016·시즌 2 2020년·시즌 3 2023년)까지 대부분의 의학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다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의료계에 대한 반감이 높은 상황에서 드라마 흥행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면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유명 배우를 기용하고 고품질 콘텐츠를 만들 경우 의정 갈등과 무관하게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OTT 작품은 국내 이슈에 영향을 덜 받는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끌 가능성도 높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OTT 자체 제작 드라마는 제작비와 규모, 특수효과 등이 국내 드라마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소구력이 있을 수 있다"며 "앞으로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인 이미지가 어떻게 변할지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의정 갈등이 잘 마무리되면 오히려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