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독재 맞선 운동권 출신 3선 국회의원의 몰락

입력
2024.12.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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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 성추행' 박완주 징역 1년 법정구속
강제추행 및 명예훼손 혐의 유죄 인정돼
재판부 "피해자 상당한 충격과 고통" 질타

군사 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사. 운동권 출신의 중량감 있는 정치인. 세 차례나 여의도에 입성한 박완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앞에 붙던 수식어다. 그러나 잘 나가던 3선 국회의원은 보좌관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정구속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부장 장성훈)는 18일 강제추행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의원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도망 우려가 있다며 박 전 의원을 법정구속했다.

박 전 의원은 2021년 12월 서울 영등포구의 한 노래주점과 인근 지하 주차장에서 보좌관 A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박 전 의원은 신체를 접촉한 뒤 A씨가 저항하자 성관계 요구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의원은 2022년 5월 성추행 혐의로 피소됐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민주당에서 제명됐다.

경찰은 두 차례 박 전 의원을 조사한 뒤 강제추행치상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강제추행치상죄는 형법상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형에 처해지는 중범죄로, 피해자가 강제추행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실이 인정될 때 적용된다. 검찰은 보완 수사를 거쳐 피해자가 민주당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에 성추행을 신고하자 박 전 의원이 면직을 시도한 혐의(직권남용), 지역구 관계자에게 피해자가 합의를 시도했다고 알린 혐의(명예훼손)까지 더해 재판에 넘겼다.

박 전 의원은 재판 내내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선고 직전 취재진 앞에서도 "저와 18년 가까이 일했던 분(피해자와의) 사이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핵심 범죄인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했다. "피해자 진술이 자연스럽고 상황에 부합한다"며 피해자가 박 전 의원에게 무고 취지로 허위 진술을 했다고 볼 이유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는 오랫동안 믿고 따르던 상사에게 성적 수치심, 모멸감 등 상당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받았다"고 박 전 의원을 질타했다.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남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죄 판단을 내렸다. 다만 강제추행치상과 직권남용 혐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는 점은 확인이 안 된다" "피해자에 대한 면직이 실제 이뤄지지 않았고 고의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각각 무죄로 판단됐다.

성균관대 총학생회 부회장 출신인 박 전 의원은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배지를 단 뒤 민주당 내 진보·개혁 성향 모임에서 활동하며 빠르게 정치적 입지를 구축했다. 19대 총선에서 충남 천안 지역에서 당선된 뒤 20·21대 총선에서도 연이어 여의도에 입성했다. 2016년에는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자리에 올랐고, 당내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모임에도 적극 참여했다.



김태연 기자
문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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