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국회 증감법) 개정안이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되자 재계는 당황하고 있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3월쯤 이 법이 시행되면 특히 금융권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국회 증감법 개정안은 개인정보·영업 비밀 보호를 이유로 서류 제출 및 증인 출석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벌금형 등 처벌 조항까지 두고 강제하는 규정이다. 해당 범위도 기존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서 '중요한 안건 심사,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또는 청문회'로 넓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기대를 걸었던 재계는 혼란에 빠졌다. 우선 범죄 혐의가 없더라도 국회가 부르면 무조건 출석하고 자료를 내야 한다면 회사 경영이 마비 상태에 빠질 것이란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현재는 뾰족한 수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민감한 개인정보나 영업 비밀도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제출을 거부할 수 없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며 "국회에 다시 개정해달라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특히 금융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법원의 계좌 추적 영장 없이도 국회에 고객의 개인정보, 거래 내역 등을 제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금융은 고객과의 신뢰가 생명인데 영장 없이도 거래 내역을 내줘야 한다면 신용도가 떨어져 우리나라 금융 산업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마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예로 사모펀드는 무기명 투자 방식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 법이 시행되면 이 같은 금융 상품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불만이 있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회장도 16일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공개로 만나 국회 증감법 개정안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계 전반으로는 핵심 기술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품·소재를 만드는 노하우를 국회에 보내야 한다면 국내외 경쟁 업체로 빠져나갈 위험성은 누가 감당하느냐는 것이다.
이 법안은 평소에 경제단체가 잘 살피지 않는 국회 운영위원회 소관이었다. 이 때문에 통과 가능성을 미리 알아차리고 적극 대응하지 못한 것을 두고 회원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경제단체 수장들이 움직였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17일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만나 '경제계 비상 간담회'를 열었다. 손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에 부담 되는 법안은 더 신중히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한상의, 경총, 한국경제인협회 등 6개 경제단체는 같은 날 공동성명을 내고 "이번 개정안은 기업 기밀과 주요 핵심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인 출석이 의무화되면 정상 사업 운영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사회의 직무 충실 범위를 회사에서 주주로 넓히는 '이사 충실 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재계는 마음이 복잡하다. 최윤희 경총 미래혁신팀장은 "소액주주들이 시시때때로 이사들에게 배임을 이유로 손해 배상을 요구하면 기업 경영이 어려워진다"며 "자금력 있는 헤지펀드 등이 더 공격적으로 경영에 간섭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9일 국회에서 이재명 대표 주재로 상법 개정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